고객 몰려드는 콘텐츠 돼야 [김정희의 아하! 마케팅]
  • 김정희 마케팅 컨설턴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30 11:00
  • 호수 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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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향 광고에서 쌍방향 놀이공간으로 의미 변화
이날치 밴드 ‘범 내려온다’ 영상 승승장구의 비결 주목

1996년 1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웹사이트에 ‘콘텐츠는 왕이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CEO였던 빌 게이츠가 작성한 것이다. 그는 글 첫 부분을 “콘텐츠는 방송과 마찬가지로 내가 인터넷에서 많은 돈을 벌 것으로 기대하는 분야”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아이디어, 경험과 제품의 시장, 즉 콘텐츠 시장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말로 끝맺었다. 그의 기대는 적중했다.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콘텐츠는 웹과 앱의 구분 없이 기세등등 위용을 떨치며 ‘왕 중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콘텐츠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소개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기업 중심의 목소리를 가득 담아 다수의 대중에게 뿌려졌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 중심축이 변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콘텐츠는 고객을 중심으로 하나의 세상을 형성한다. 고객은 콘텐츠를 통해 관심 있는 브랜드와 상호작용을 하고 브랜드의 성장에 직접 참여한다. 콘텐츠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 서로 소통하는 세상이 됐다. ‘일방향’ 광고 메시지로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국악 퓨전 밴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협업한 ‘범 내려온다’ 영상ⓒ한국관광공사 유튜브

구매하기 전에 3~5개 콘텐츠 먼저 봐

이제 사람들은 넘치는 광고를 차단하고 일방적인 기업의 메시지를 가차 없이 외면한다. 기업과 마케터는 고객이 가치 있다고 여기며 신나게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고객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면 기업은 브랜드 인지도 향상은 물론, 브랜드를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돼 매출 향상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마케팅 전략이 고객에게 제품을 직접 팔기보다는 그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하는 이유다.

글로벌 디지털 마케팅 솔루션 기업 허브스팟이 발표한 ‘2021 마케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구매자의 47%는 판매자와 소통하기 전에 3~5개 콘텐츠를 본다. 또한 마케터의 82%가 2021년 콘텐츠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비즈니스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기업은 고객과의 디지털 접점을 빠르게 확충하며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주력했다. 고객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콘텐츠를 접하며 옥석을 가리기 시작했다.

고객에게 가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졌고, 몇 개의 콘텐츠를 제공했느냐보다 어떤 가치를 제공했느냐가 기업의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많은 기업이 고객의 특성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구매 여정 전반에 걸쳐 브랜드에 연결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마케터는 목표 고객을 분석해 진정성, 재미, 공감, 유익한 정보, 선행 등 그들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요소들을 찾아낸다. 그다음 구매 여정 곳곳에서 그들이 모여 있는 미디어 채널로 가서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그 이야기를 띄운다.

콘텐츠 전략에서 빠지면 섭섭한 요소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뜻 그대로 이야기를 말하는 것으로, 제품 및 서비스 브랜드가 고객에게 말을 거는 것과 같다. 고객이 브랜드가 전하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브랜드와 대화를 이어간다면 관계 맺기가 시작된 것이다. 얼마나 오래 반복적으로 고객과 브랜드가 소통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과도 달라질 수 있다. 고객은 단순히 브랜드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같이 구매한다. 또는 이야기를 구매하며 그에 딸린 브랜드를 구매하기도 한다. 기업은 브랜드와 이야기를 함께 판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 아오모리현은 세계적인 사과 생산지다. 1991년 위력적인 태풍의 영향으로 사과 생산량의 90% 정도가 피해를 입었다. 출하를 앞둔 사과 대부분이 땅에 떨어졌고, 얼마 남지 않은 사과마저도 상처가 나고 맛도 떨어졌다. 낙심만 하고 있을 수 없었던 한 농민이 당시 대학 입학 시즌을 앞두고 아이디어를 냈다. 사과에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합격 사과’라는 이름을 붙이고 태풍을 이겨낸 사과니만큼 힘든 입시를 이겨내고 합격을 선사할 사과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합격 사과’는 비싼 가격에도 엄청난 인기를 끌며 팔려 나갔다.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서 무조건 브랜드가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고객은 스마트하다. 기술의 발전으로 기업만 발전한 것이 아니다. 모바일을 손에 쥔 고객은 언제 어디서나 기업 콘텐츠에 참여한다.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공유하며 기업에 소비권력을 행사한다. 스마트한 고객의 눈높이는 자주 기업의 눈높이 위에 있다. 고객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얻고 싶다면 그들이 중시하는 가치와 재미를 똑같이 중시하고 표현하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관광공사가 최근 유튜브에 공개한 충남 서산면 ‘머드맥스’ 영상 ©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한국관광공사가 최근 유튜브에 공개한 충남 서산면 ‘머드맥스’ 영상ⓒ한국관광공사 유튜브

바지락 캐러 가는 경운기에 관심 폭발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를 듣자마자 리듬을 타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로 선보인 ‘범 내려온다’는 국악 퓨전 밴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협업한 한국 관광 홍보영상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저 세상 힙함을 보여주는 K컬처’란 찬사를 받았다. 최근 유튜브에 공개한 충남 서산 편 ‘머드맥스’ 영상 역시 연일 화제다. 바지락을 캐러 가는 어민들의 경운기가 갯벌 위를 《옹혜야》 민요 가락에 맞춰 줄지어 달리는 모습이 사람들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머드맥스’ 영상의 인기로 촬영지 방문 문의가 늘어나고 바지락 경운기의 관광상품 개발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더 나아가 가로림만 해양정원 조성 계획까지 논의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승승장구다. 기존의 틀을 깬 재미와 놀이, 가치를 다 잡은 성공적인 콘텐츠 마케팅 사례다. 기업은 콘텐츠를 매개로 고객과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할 때 브랜드 인지도, 고객 참여, 수익 창출 등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콘텐츠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을 연결하며 고유한 세상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다. 콘텐츠 세상이다.

이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디지털 바람을 타고 신나게 세상을 서핑 중인 콘텐츠 보드에 올라타지 않을 자가 누구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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