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시대 제주 장인의 가치에 '브랜드'를 입히다
3. 책밭서점

김창삼 대표 평생 바친 고서와 제주향토자료 "훌륭한 로컬문화"
동네책방 위기에 역사 소재 네트워크 공동체·공간 개선 등 제안

책밭서점을 들어서면 헌책 특유의 냄새가 가득 찬다. "내가 놓아버리면 사라질까봐"라는 이유로 김창삼(사진 위)씨는 29년째 헌책방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 역사가 담긴 책방에 새로운 옷을 입히기 위해 전예원·헤이즐·장지은(사진 왼쪽부터)씨가 한 곳에 모였다.
책밭서점을 들어서면 헌책 특유의 냄새가 가득 찬다. "내가 놓아버리면 사라질까봐"라는 이유로 김창삼(사진 위)씨는 29년째 헌책방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 역사가 담긴 책방에 새로운 옷을 입히기 위해 전예원·헤이즐·장지은(사진 왼쪽부터)씨가 한 곳에 모였다. 사진=이성근@winter_photo

책밭서점은 1985년 2월 문을 연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 어린 곳이다. 서점을 운영하는 김창삼 대표(63)는 오전에는 농사짓고 오후에 헌책방 문을 오픈한다. 대학시절 축산을 전공하고 축산회사에 다니던 그는 1992년 7월, 자신이 첫 손님이자 단골이었던 책밭서점을 과감하게 인수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헌책방 주인은 대학시절부터의 꿈이었다. 35세에 오랜 꿈을 이뤘지만 동네 책방들이 다들 겪는 위기를 피해가기는 어려웠다. 점점 어려워지는 운영은 물론 창고 가득 쌓여가는 제주 관련 서적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쌓여가던 차에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진행하는 '로컬 브랜딩 스쿨'을 만났다.

△시대 변화에 휩쓸린 책방 "변화 필요"
책밭서점의 첫 위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임대료를 내지 못할 상황에 처하기를 몇 번 거듭했다. 광양사거리 인근 큰 길가에서 2007년 구석진 골목으로 이사를 하면서도 김창삼 대표는 책밭서점을 놓지 못했다. "내가 놓아버리면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김창삼 대표는 "경제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적자를 볼 때도 있었다"며 "멀리 구좌읍에서 이것 저것 농사를 시작했고, 밭작물도 해봤지만 하늘도 무심했는지 자꾸 손해를 봐서 지난해에는 다 접고 감귤 과수원 하나만 하고 있다"고 근황을 소개했다.

현재도 책방 운영은 쉽지 않다. 인터넷 서점이 들어서고 놀거리도 늘어나면서 책을 찾는 인구는 줄어들고, 동네 책방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제주에 47개 있던 독립서점도 지난 한 해 사이 10곳 남짓 간판을 내렸다. 

책방을 운영하며 30년 가까이 꾸준히 모아온 고서와 제주관련 문헌을 한 자리에 모아보고 싶은 소망은 아직도 아득한 일이다. 창고에 쌓여 있는 고서만 2700권, 제주관련 향토자료는 5400권에 이른다. 향토자료는 제주의 마을, 학교, 기관들이 발행한 책과  제주작가들의 문학작품 등 그 안에 또다른 작은 제주의 역사가 담겨 있다.

책밭서점도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즈음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2020 로컬 브랜딩 스쿨을 만났다. 알듯 말듯 모호했던 변화의 방향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네트워크 공동체로 지역 연대 모색
책밭서점의 브랜딩을 맡은 팀은 장지은(34)·헤이즐(20)·전예원(33)씨 등 3인이다. 웹디자이너 전예원씨와 광고·단편영화 프리랜서 일을 해온 장지은씨에 중국에서 유학 온 막내 헤이즐씨의 참여로 글로벌 크리에이터 팀이 만들어졌다.

크리에이터팀은 김창삼 대표가 평생 수집하고 공부해온 향토사·서적 관련 지식을 부각시켜 '향토사 큐레이터'로서 지역과 연결하고 연대로 나아가는 방안을 제안했다.

소통의 대상은 두가지로 압축했다.

하나는 역사에 관심이 있는 로컬 사람들이다. 헌책방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제주역사에 관심있는 대학생은 물론 향토사를 배우려는 단골들, 4·3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책방을 찾았다는 영화제작자까지 다양한 방문 동기를 들을 수 있었다.

로컬문화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을 연대와 연결이라는 키워드 아래 네트워킹이 가능한 공동체로 만들자는 목표가 생겼다.

보존가치가 높은 책을 모아놓은 창고를 큐레이터의 서재를 만들어 지식을 공유하는 만인의 서재로 운영하는 방안이 그중 하나다. 이를테면 콘텐츠 창작자 등과 향토사를 매개로 지식을 공유할 수 있고, 예약제 북클럽이나 책 디지털화·복원 모임, 향토사 투어 등 공동체를 꾸리는 것도 가능하다.

또다른 소통의 타깃은 역사를 어려워 하거나 관심이 적은 여행객로 잡았다. SNS에 올라온 핫플레이스에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 역사가 멀리 있거나 지루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고 '힙'한 것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김 대표가 가진 가치있는 고서를 골라 로컬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시회를 구상했다. 어느덧 유명해진 부산의 책방골목처럼, 여행객들이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로컬 문화를 느끼고 싶어하는 경향을 감안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살아있는 제주이야기 로컬 가치 충분"
김창삼 대표는 "처음에는 이야기를 들어도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젊은 친구들이 귤밭까지 찾아와 열심히 매달려서인지 '바꿀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책방의 일부를 비워 토론이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거나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생각도 들게 됐다.

그는 "내 나이쯤 된 헌책방하는 사람들에게 책방은 책을 쌓아놓는 곳이라는 개념이 강한게 사실"이라며 "책을 정리하고 책방 가운데를 터서 여유있는 공간으로 변화를 줄 필요성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많은 향토자료를 활용해 향토사를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고 토론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방안에 크게 공감한다"며 "리모델링은 당장 결정하기 어렵지만 조만간 책방을 물려줄 즈음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책밭서점 브랜딩을 맡은 장지은씨는 "가치있는 책들이 버려지는게 아까워 평생 수집·보전해온 김창삼 대표를 향토사 장인이자 큐레이터로서 흠모하게 됐다"며 "그에게서 살아있는 제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어 "역사적 자료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을 맡아 특히 사람들간 네트워킹에 중점을 뒀다"며 "장인은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는 한 개인의 삶을 증명했다. 함께 응원을 받은 뜻깊은 프로젝트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제주에서의 두번째 작업이라는 전예원씨는 "책밭서점의 네트워크는 중심이 되는 김창삼 장인의 퍼스널리티가 중요하다. 나이를 떠나 모두 포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토크, 고서복원 등도 중요하지만 책방을 리노베이션 해 소통의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이어 "문예창작과를 다녀 책과 동네책방에 관심이 많았고 과정도 재미있었다"며 "서울에서는 로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제주에 오래 머물면서 여행할 때는 알기 어려운 오랜 로컬문화를 제대로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미디어 문화를 배우기 위해 고려대에 유학중인 막내 헤이즐씨는 "관광지로 알던 제주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는 느낌이 늘었고, 장인과의 대화에서 로컬의 힘과 중요성도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맥주와 커피를 소재로 세계적 로컬문화를 이룬 미국 포틀랜드를 예로 들면서 "제주 역시 많은 콘텐츠를 품고 있는 만큼 포틀랜드처럼 로컬문화를 발전시킬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봉철 기자

※이 기획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공동으로 기획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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