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시대 제주 장인의 가치에 '브랜드'를 입히다
2. 100번쌀집

오랜 세월 신서란 초경공예 이어온 김석환 장인의 공간
단절 위기에 이해원·김은정·홍어진 3인방 브랜딩 나서
'엮음' 브랜드화, 실용적 상품 개발, 도내업체 협업 제안

서귀포시 대정읍 제주은행 건너편에는 '100번쌀집'이 5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은 이 작은 쌀집에서는 쌀과 곡류 말고도 김석환 장인(83)이 만든 특별한 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 제주에 자생하는 신서란을 재료로 만든 초경공예 작품들이다. 옛날에는 동네 사람 대부분 만들 수 있었다지만 마트에 값싼 생활용품이 넘쳐나는 지금은 명맥이 끊길 위기다. 김석환 장인의 제주 초경공예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센터장 전정환)의 '로컬 브랜딩 스쿨'에 참여한 제주출신 디자이너·마케터 3인이 뭉쳐 해답 찾기에 나섰다.

△"사명감 하나로 이어가기엔 막막"
김석환 장인이 신서란으로 새끼줄을 꼬아 망태기와 구덕, 짚신, 지게 등을 만든 세월은 7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배워 지금까지 이어왔다. 같은 동네 허세안 어르신도 만들 줄 알지만 이미 아흔을 넘은 연세로 작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한다. 

재료인 신서란은 뉴질랜드가 원산지로 워낙 질기고 튼튼해 나일론이 없던 시절에는 배의 닻줄로 쓰일 정도였다. 또 육지의 볏짚에 비해 가늘게 뽑을 수 있어 섬세한 작업에도 안성맞춤이다.

작업은 오래 걸리는 편이다. 신서란을 가늘게 잘라 말리고 걷어내기를 반복하며 마른 신서란을 다시 적셔 두드리기를 해야 겨우 기본적인 새끼줄을 꼬을 재료가 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만들고 싶다"는게 장인의 바람이지만 어떻게 물려줄지는 막막하기만 하다. 3일 걸려 완성한 망태기를 3만원 남짓에 팔다보니 수입은 소일거리 수준. 배우겠다는 사람이 더러 있었지만 이내 포기하기 일쑤였다.

둘째 아들 김민형씨(56)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사명감 하나로 대를 잇기에는 당장의 생계부터 걱정"이라며 "다섯평도 안되는 쌀집 안에서 작업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 만드는 방식, 판로 등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50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100번쌀집'을 들어서면 초경공예 작품들과 함께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표정을 머금은 김석환 장인(사진 가운데)을 만날 수 있다.
50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100번쌀집'을 들어서면 초경공예 작품들과 함께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표정을 머금은 김석환 장인(사진 가운데)을 만날 수 있다.

△수없는 '엮음'의 과정 브랜드로
김석환 장인의 사정을 듣고 100번쌀집 브랜딩에 나선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제주 출신 3인이었다. '2020 로컬 브랜딩 스쿨'에 참여한 이해원 맨써컴퍼니 대표(50)와 김은정 혼디디자인 대표(40), 홍어진 디자이너(30)가 장인의 초경공예를 빛내고 후대에 전승할 방법을 찾는데 뜻을 모았다.

브랜드아이덴티티(BI)는 쌀가게 이름인 '100번'과 초경공예의 수많은 반복 작업을 연결시켜 새롭게 만들었다. 새끼줄 하나를 만드는데에도 수없이 많은 '엮음'의 과정이 들어있다는 점에 착안해 브랜드에 시간을 녹여낸 것이다. '100번'이라는 브랜드 상징은 제품 디자인에도 활용돼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지게·짚신소품과 망태기 정도로 한정된 작품도 다양화를 제안했다. 장인의 향토적 작품은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유지하면서 보자기를 덧댄 바구니, 컵 받침, 테이블 매트 등 실용적인 아이템으로 쓰임새를 넓히자는 것이다. 갈천 업체의 원단을 이용하거나 친환경유통매장에 상품을 담는 소품을 납품하는 등 도내 업체와의 협업도 가능한 아이디어다. 

한정된 제작 수량은 지역내 자활기업이나 사회적기업 등과의 협력을 통해 일자리 창출을 연계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장인이 직접 만드는 고급 작품은 외국인관광객 등을 상대로 브랜드 홍보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이와 함께 쌀판매와 작품 제작·전시·판매가 두서없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는 가게를 손님맞이-전시-제작-교육-곡류판매 등 공간별로 분리하는 3D 리모델링 설계를 직접 수행해 제시했다.

김은정 혼디디자인 대표(사진 왼쪽) 로컬 크리에이터 이해원 맨써컴퍼니 대표(사진 가운데) 홍어진 디자이너(사진 오른쪽)는 장인의 초경공예를 빛내고 후대에 전승할 방법을 찾는데 뜻을 모았다.
김은정 혼디디자인 대표(사진 왼쪽) 로컬 크리에이터 이해원 맨써컴퍼니 대표(사진 가운데) 홍어진 디자이너(사진 오른쪽)는 장인의 초경공예를 빛내고 후대에 전승할 방법을 찾는데 뜻을 모았다.

△스토리가 있는 상품화 "만족" 관심 호소
작품에 스토리를 입히고 쓰임새를 넓혀보자는 제안은 일단 김석환 장인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열심히 배울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다해 전수해주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다만 장인은 나이를 감안해 전수에 초점을 맞추고 이후의 길은 아들에게 맡긴다는 생각이다.

둘째 아들 김민형씨는 "로컬 브랜딩 스쿨에 참여해 보니 정말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봤고, 내가 막연하게 바라왔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사실 아버지의 작품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면서 '내가 하지 않으면 맥이 끊길텐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고민이 항상 있었다"고 말했다.

또 "현재는 취미나 작은 장사 수준이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아질 것"이라며 "가능성은 충분해 보이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전통공예 대중화 차원에서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제주살이 25년차 이해원씨는 "복합문화공간 맨써스페이스 오픈을 준비하면서 로컬 콘텐츠 만들기에 관심이 많아 참여했다"며 "여행객이 많은 제주는 소통 공간이 더 필요하고, 그중 제주다운 것을 부각할 만한 지식과 교육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파트너들의 적절한 조언으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제주 안의 여러 로컬 브랜드들을 알게되는 발견의 기쁨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로컬 디자인에 푹 빠진 김은정씨는 "우리나라에서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품인 만큼 가치가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며 "초경공예는 굉장히 신선했고 로컬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막내이면서도 아이디어를 쏟아낸 홍어진씨는 "친환경이자 전통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초경공예는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다"며 "전승을 위해 최대한 사업성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골몰했다. 더 많은 연결을 통해 장인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기대를 전했다.

홍씨는 이어 "우리도 '엮음'의 과정을 겪었다. 제주에 와서 막막함을 덜고 성장하는데 도움이 됐다"며 "제주에는 젊은 크리에이터가 필요하고, 뜻있는 디자이너·기획자도 많은데 서로를 찾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앞으로 계속 제주에서 활동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고 말했다. 김봉철 기자

※이 기획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공동으로 기획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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