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시대 제주 장인의 가치에 '브랜드'를 입히다
1. 베케정원

김봉찬 장인 "베케 브랜드 정립 고민"…문주·김민경·김희주팀 나서
가치·스토리 담은 퍼스널브랜딩, 멤버십·교육 등 커뮤니티 확산 제안
제주 로컬 장인의 가치와 브랜딩 가능성 재발견…"큰 도전 이뤄 만족"

'로컬'의 시대다. 서구사회가 1970년부터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탈물질주의 사회로 접어든 이래 한국에서도 2000년 중반 골목길의 부상과 함께 로컬 지향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그의 저서 「골목길 자본론」을 통해 "탈물질주의 경제를 실현하려면 생산과 소비문화가 로컬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타 지역이 모방할 수 없는 로컬적 특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장인'이다. 다만 자신만의 작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가 만든 세상과의 연결이 필요하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센터장 전정환)가 진행한 '로컬 브랜딩 스쿨'을 통해 제주의 장인과 로컬 크리에이터가 만나 더 큰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을 5회에 걸쳐 들여다 본다.

# 자연스러운 제주를 담은 정원
서귀포시 효돈로에 위치한 베케(VEKE)정원은 자연같은 정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만한 정원이다. 식물학과 생태학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생태정원을 만드는 조경전문가인 김봉찬 더가든 대표가 고향에 만든 공간이다.

김봉찬 대표는 여미지식물원에서 근무했고 이후 포천 평강식물원, 곤지암 화담숲 암석원, 서귀포시 핀크스 비오토피아 생태공원 등에 이어 최근에는 아모레 성수가든을 만들었다. 암석정원과 습지원, 그늘정원 등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 자연주의·생태주의 정원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베케정원은 그런 그가 누군가의 의뢰가 아닌, 온전히 자신이 생각한 생태정원으로 구현해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쟁기로 밭을 갈다가 나오는 돌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돌무더기를 뜻하는 '베케'로 이름 짓고 그 뜻처럼 자연스러운 제주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반듯하게 다듬은 나무와 형형색색의 꽃과 같이 특별한 요소가 강요되는 정원보다 이끼가 드리운 베케와 곶자왈 속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내는 고사리들, 오름 등 식생이 주는 자연스러움, 무너진 감귤창고마저 자연의 한 부분이 되는 여유로움이 정원 전체를 흐른다. 

김 대표의 목표는 베케를 더욱 가다듬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정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제대로된 생태정원은 거의 없다"며 "장식용 나무와 잔디를 입히고 이용만 하는 것을 생태정원이라 부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단언했다.

녹지를 원래의 주인인 동식물에게 돌려주고, 사람은 그곳에서 힐링을 얻는 것을 도시의 '재자연화'로 정의했다. 이를 따라 생명을 불러들이는 정원을 '베케'로부터 시작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펼치고 있다.

김봉찬 장인이 문주·김민경·김희주 크리에이터와 함께 베케 정원을 걷고 있다. 이들은 지난 한달 베케의 새로운 브랜딩을 위해 머리를 맞대왔다.

# 생태정원 정체성 찾기 '도전'
전반적인 정원 조경 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목표을 위해 김봉찬 대표는 SNS를 시작하고 제주에서 정기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시작했지만 갈 길이 멀다. 생태정원의 출발로서 베케가 자리잡는 것이 급선무였다.

찾는 사람은 많지만 생태정원으로서 베케의 브랜드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정원을 만들면서 차를 마시고 사람들 안내도 할 요량으로 한켠에 마련한 카페가 생각보다 너무 유명세를 탄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됐다. 

주객이 바뀌고 있다고 느낄 즈음, 베케정원을 새롭게 브랜딩 해보자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2020 로컬 브랜딩 스쿨' 프로그램이었다.

김봉찬 대표는 로컬 장인으로서 브랜딩 스쿨을 통해 3명의 로컬 크리에이터와 새로운 브랜딩, 콘텐츠를 고민할 기회를 얻었다. 참여 크리에이터중 가장 젊은 문주·김민경·김희주 디자이너가 팀을 이뤄 한달간 집중적으로 브랜딩 방안을 찾아나갔다. 

중간발표와 최종발표를 통해 크리에이터팀이 내놓은 문제와 개선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베케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브랜딩이 부족하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베케를 찾는 여행객들이 생태정원보다 카페에 딸린 공간으로 인식하면서 사진만 찍고 가는 일회성 관광지가 됐고, 이로 인해 그 가치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홍보에서도 베케와 관계없는 해시태그나 딱딱한 SNS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팀은 1단계로 장인의 이력이나 업적 소개에 그친 퍼스널브랜딩을 가이드북이나 소식지를 통해 가치관과 스토리를 담아내는 방식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자연 그대로인 이끼와 돌의 색을 담은 새 브랜드아이덴티티를 적용하고 정원을 즐길 수 있는 지도와 컬러링북, 정원 곳곳에 QR코드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찾아냈다. 카페에서도 확고한 정체성을 담은 시그니쳐 메뉴가 필요하다고 봤다.

2단계는 팬덤과 커뮤니티 활성화에 주안을 뒀다. 와디즈 펀딩과 커뮤니티를 통해 새로운 타깃층을 확보하고 재방문자를 위한 우선예약권이나 베케 멤버십, 굿즈·가드닝키트 판매, 해설 프로그램 도입을 주문했다. 

마지막은 확산 단계로, 관람객 뿐만 아니라 정원 조경 전문가를 꿈꾸는 신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 '베케너가 직접 알리는 베케'를 목표로 잡았다. 베케의 팬들이 스스로 정원을 알려나가고 새로운 정원 문화를 선도하는 최종 단계다.

# "상큼하고 독특한 아이디어 큰 만족"
김봉찬 대표는 크리에이터팀의 제안에 대해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게 너무 많았다.

젊은 친구들답게 상큼하고 독특한 아이디어가 인상적"이라며 큰 만족감을 표했다.

구체적으로 재방문자를 위한 멤버십 도입과 QR코드를 통한 정원 소개를 꼽으며 "당장 실현할 만한 것도 있고, 정원 문화 교육과 교류행사를 강화할 필요성도 느꼈다"며 "가이드북과 책은 평소 생각하던 것과 일치했고, 앞으로 수년에 걸쳐 정원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카페를 옮겨 그 자리를 뮤지엄으로 활용하는 구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한 로컬 크리에이터들에게도 베케정원의 가치를 되찾는 이번 프로젝트는 크리에이터로서 큰 도전이자 경험이었다.

문주씨(24)는 "생태정원으로 알려지기를 원했지만 사람들의 소비가 다른 방향으로 가는 원인을 분석해 장인의 생각과 신념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게 목표였다"며 "한 달 안에 결과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브랜딩 스쿨에서 마스터와 파트너들로부터 강연을 듣고 교육 중간에도 열정적인 대화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IT와 4차산업 등 새로운 디자인 트렌트에 신경을 쓰던 것에서 시야를 넓혔고, 로컬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며 "특히 로컬문화는 아직까지 서울과 비교해 급이 낮다는 잘못된 인식이 있다. 로컬이기 때문에 특색이 있고 즐길만한 것들이 많아 앞으로 디자이너로서 타 지역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김희주씨(24)는 "폐공장 지역에서 김봉찬 장인이 만든 성수가든을 인상깊게 봤는데 만나게 돼 영광이었다"며 "제주는 워낙 소재가 많고 관심이 많은 지역이라 발굴만 제대로 한다면 훌륭한 로컬 브랜드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이어갔다.

팀의 막내인 김민경씨(22)는 "걱정이 앞섰지만 열심히 강연을 듣고 최선을 다해 만족할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디자인이나 기획에서 내가 완전히 이해하고 스토리를 담을 수 있어야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앞으로의 작업에서도 항항 이런 방식을 상기하면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봉철 기자

※이 기획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공동으로 기획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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