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상간자 책임 안묻는다" 한국서 독일법 외친 슈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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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5.27. 오전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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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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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부인 김소연 씨가 2018년 1월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결혼 축하연에서 활짝웃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게르하르트 슈뢰더(77) 전 독일 총리 측이 재혼한 김소연(51)씨의 전 남편이 제기한 상간자 손해배상 소송에서 “혼인 파탄에 대한 책임이 없다”, “독일에서는 상간자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못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20일 김씨의 전 남편 A씨가 청구한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슈뢰더 전 총리에게 3000만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이 시작된 지 3년여 만의 1심 결론이다.

法 "유부녀와 부정행위, 슈뢰더 혼인 파탄 책임 인정"
한국 법원이 슈뢰더 전 총리 주장을 배척한 건 독일은 실질적으로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면 한쪽의 부정행위 등 잘못과 상관없이 이혼을 허용하는 '파탄주의'이지만 한국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인정 않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자료 등 결혼생활 파탄의 책임도 묻는다.

이에 따라 법원은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슈뢰더 전 총리에게 혼인관계의 파탄 원인이 있다고 인정해 3000만원을 A씨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슈뢰더 전 총리가 김씨에게 배우자가 있음을 알면서도 부정행위를 했고, 이 부정행위로 A씨의 부부 공동생활이 파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슈뢰더 전 총리 측은 A씨 부부의 관계가 자신과 무관하게 이미 오래전부터 파탄됐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법원은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혼인 파탄책임이 슈뢰더 전 총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슈뢰더 전 총리와 김씨는 2017년 9월 열애설에 휩싸였고, 2017년 11월 김씨와 A씨는 협의이혼절차를 마쳤다.

1심 소송을 담당한 A씨의 대리인 민의홍 변호사(법률사무소 건우)는 “1심 재판부는 슈뢰더 전 총리와 김소연씨와의 부정행위로 인해 A씨의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위자료 산정 역시 합리적인 범위에서 책정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슈뢰더 측 “독일에선 부정행위가 불법이 아니다”
재판에서 슈뢰더 전 총리 측은 독일 이혼법에서는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제3자에 대해 손해배상이나 위자료 책임을 묻지 못한다는 점도 함께 주장했다.

실제 유책주의를 채택한 한국과 달리 1976년 이혼법을 개정해 파탄주의로 전환한 독일은 혼인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나 제3자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외국 사법제도연구의 ‘독일의 이혼제도’ 보고서에도 독일에서는 이혼 후 상대 배우자에 대한 부양의무를 규정할 뿐 위자료 청구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나온다. 슈뢰더 전 총리 측은 이런 법률적 차이를 근거로 들며 자신이 독일인인 관계로 이 문제가 한국에서 위법인지 몰랐고,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도 함께 폈다.

하지만 법원은 이같은 슈뢰더 전 총리 측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이번 소송에서 기준으로 적용해야 할 법인 ‘준거법’은 독일법이 아닌 대한민국법이라고 판단했다. 슈뢰더 전 총리가 외국인이더라도 불법행위의 결과(혼인 파탄)가 발생한 곳이 우리나라라면 대한민국의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어 국내법으로 불법행위가 인정되는 이상 슈뢰더 전 총리 측이 외국인이라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불법행위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봤다.

인정된 3000만원,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A씨는 이번 1심 판결에서 승소했지만, 슈뢰더 전 총리 측에서 항소한다면 소송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1심은 인정된 3000만원에 대해 가집행할 수 있다는 주문을 함께 선고했다. 가집행은 확정판결 전이라도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강제 집행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A씨의 경우 국내에 슈뢰더 전 총리의 재산이 있다면 1심 판결에 따라 강제 집행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슈뢰더 전 총리의 재산이 없다면 판결이 확정된 뒤 독일 법원에 승인 신청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승인 여부가 또 하나의 쟁점이 될 수 있다. 독일법에 능통한 한 부장판사는 “우리나라 법이 그 나라의 사회 상규에 반하는지 다퉈질 수 있어 상간자에 대한 위자료 청구 가능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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