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어차피 벌금이나 집행유예” 사망사고에도 건설사 대표가 '철면피'일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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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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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 건설사 대표가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후 “벌금이나 집행유예가 나오면 그만”이라며 유족과의 민·형사 합의에 불성실하게 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 현장에서 사측 과실로 안전사고가 이어지지만 검찰에서 ‘솜방망이 구형’을 하는 탓이 크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 규정이 강화됐지만 사법기관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6일 검찰 공소장 등에 따르면 일용직 건설노동자 A씨는 지난해 8월18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한 판넬 철거 현장에서 안전장비 없이 작업하다가 7m 철골 위에서 추락했다. 그는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했다. B건설사는 A씨에게 안전벨트를 비롯한 안전장비를 지급하지 않은 것은 물론 난간이나 추락방호망도 설치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상 의무인 해체 건물구조 사전조사나 해체 방법과 관련된 작업계획서 작성도 하지 않았다.

황당한 일은 사고 이후에도 벌어졌다. B사 대표 C씨는 지난해 9월 유족과 민·형사 합의금 문제로 대화하던 중 “벌금 무는 게 백번이고 낫다. 벌금 몇백만원(밖에) 안 나온다, 그런데 여기는(합의금은) 몇백(만원)이 넘어서 1000(만원으로)단위가 올라간다”며 “지금 나오면 200~300(만원)이야. 그리고 더 떨어지면 집행유예야”라고 말했다. C씨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보험 처리 등 유족에 최대한 협조를 하다가 합의금 요구가 과해서 협상을 해보려는 의도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지금이라도 합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C씨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건설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사법당국이 업체에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3월9일 C씨에게 산안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6개월을, B사에 산안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원을 각각 구형했다. 유족은 “안전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명확하고, 피해자와의 합의도 없었음에도 솜방망이 구형을 했다”고 주장했다.

개정 산안법이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되면서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기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보다 처벌 상한선이 올라갔지만 하한선이 없어 가벼운 처벌이 반복되고 있다. 강한수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건설사들이 산재 사고를 ‘운이 나쁜 일’로 치부하며, 사고가 일어나도 ‘당연히 처벌되지 않는다’고 여기도록 산안법 집행이 이뤄져 온 것”이라며 “한 업체, 법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 현장 전체의 문제”라고 말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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