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년간 재산등록한 공직자 130만명 중 수사는 4명뿐...땅투기 공무원 못잡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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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07. 오전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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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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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간 재산등록 130만명…수사 의뢰 4명 ‘0.0003%’
심사인원 부족, 재산등록자 36%만 실제 조사
차명 거래조사는 ‘불가능’..."전 공무원 재산등록은 쇼"

정부가 한국토지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 후속 대책으로 9급 공무원 이상 전(全) 공직자 재산등록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현행 재산등록 제도가 사실상 무용지물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 동안 재산등록을 한 공직자 130만명 중에서 재산형성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정황으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사람이 불과 4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산등록 대상자 중 불과 0.0003%만 수사를 받았다는 얘기다. 현재 시행 중인 재산등록제도가 공직자 비위를 걸러내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정부세종청사 내 국무총리실이 자리한 1동 건물로 점심식사를 마친 공무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조선DB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공직자 비위를 걸러내기 위해서는 신고받은 재산자를 검증해야 하는데, 검증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 실질적인 비위 적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전공직자 재산등록 의무화 조치가 땅 투기 공무원을 적발하는 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7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10년치 공직자윤리법 조사의뢰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접수된 재산등록자수는 130만4384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심사에 나선 대상자는 47만159명으로 약 36% 수준이었다. 재산등록자 10명 중 3명만이 실제 심사를 받는다는 의미다.

특히 10년 간 재산등록자 중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문제를 적발해 법무부장관(공무원)이나 국방부장관(군인 혹은 군무원)에 조사를 의뢰한 것은 4명 뿐이었다. 2016년 1명, 2017년 2명, 2018년 1명 등이다.

공직자윤리법 제8조(등록사항의 심사)에 따르면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재산등록과 관련해 ▲거짓 정보 등록 ▲직무상 알게 된 비밀로 재산이익 ▲직무와 관련한 뇌물 수수 ▲지위를 이용한 다른 공직자 알선 등의 문제를 적발할 경우, 증명서류를 첨부해 법부무장관이나 국방부 장관에 조사를 의뢰해야 한다.

현재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공직자윤리법 제9조에 따라 중앙부처공무원 4급 이상, 지방자치단체 3급이상, 중앙부처 산하 공직유관단체 재산등록의무자를 대상으로 심의를 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토지공사(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 사건 후속대책으로 정부는 교직원, 경찰·소방직 등을 포함한 9급 이상 모든 공직자들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사건이 불거진 후 3기 신도시 후보지 등 개발호재가 있는 지역에 지자체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투기성 토지 매입을 한 사실이 드러난 데 따른 후속조치다. 내부 정보를 활용한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다.

4급 이상인 재산등록 의무대상을 9급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현행 23만명인 재산등록의무 대상자는 최대 153만명으로 7배 가까이 늘어난다.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의 재산도 신고 대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1000만명에 이르는 국민들의 재산 정보가 신고 대상에 오르는 셈이다. LH투기 의혹으로 성난 민심을 덮기 위한 대책이 공무원 증원이라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현행 공직자 재산등록제가 비위 적발에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부가 실효성 없는 규제를 확대해 하위 공직자들에게 쓸데 없는 규제만 강요한다는 비판이 나오게 됐다.

2011~2020년 공직자윤리법 조사의뢰 현황 /추경호 의원실

공직사회에서는 현행 공직자 재산등록제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이유로 인력부족을 손꼽고 있다. 일반직 공무원 기준 4급 이상이 재산신고 대상인 현행 제도상. 각 지자체 등 관청에서 재산 등록, 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구청 등 기초단체에서는 1명이 200명 이상의 재산신고 기록을 관리하고 있다. 신고된 재산 등록 자료가 제대로 작성된 것인지, 등록 자료를 통해 재산형성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제 한 경제부처의 핵심 고위직 A씨의 경우 재산등록에서 8억원 가량의 재산을 신고했지만, 시세 20억원 가량으로 추정되는 강남권 신축 아파트 분양권을 3억5000만원으로 신고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또다른 경제부처 최고위직 B씨의 경우 재산을 14억원으로 신고했는데, 시세 15억원 가량으로 추정되는 세종시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권을 2억4000만원으로 신고했다. 재산신고 내역을 검증하는 절차가 있었으면, A씨와 B씨의 경우 재산을 과소 신고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현행 재산등록제의 헛점이 드러난 사례로 지목된다.

이 때문에 현행 공직자 재산등록제를 기반으로 공직자들의 투기 등을 적발하기 위해서는 재산신고를 전담하는 공무원을 별도로 증원해야만 한다. LH 땅 투기 사건 등 공직자들의 비위 행위를 적발하기 위한 전공직자 재산등록 의무화 제도가 역설적으로 공무원 증원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관가에서는 신고된 재산정보를 검증하고, 이를 투기 적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수천명 이상 공무원이 증원돼야 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추경호 의원은 "지금도 심사인원이 부족해, 재산등록자 중 36% 밖에 심사를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는 단순히 여론 달래기 용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니라, 현실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세종=박성우 기자 foxps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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