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성 급성중독 문제, 임상의사와 직업환경의학자 연계가 '열쇠'

박효순 기자

■최원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인터뷰

지난 5월 28일 인천 남동공단의 한 도금사업장에서 입사 3주밖에 안된 직원(23)이 환기 및 보호구 착용 없이 도금조에 물과 시안화나트륨을 혼합하는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경련을 하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구급차를 통해 응급실에 이송되었는데 이미 저산소증에 의해 뇌사상태에 빠졌고 며칠 후 사망했다.

뒤늦게 메탄올 등 각종 화학물질에 대해 조사한 끝에 혈액에서 시안이온(청산가리)이 검출됐다. 상태가 위중해서 해독제를 투여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해독제를 투여해 볼 시간도 놓쳤다. 사업장을 조사하니 작업장 공기에서 시안화수소가 검출됐다. 남동공단은 2016년 초 메탄올 중독으로 인해 청년 노동자가 실명한 곳이기도 하다.

직업병 역학과 중독질환 전문가인 최원준 교수가 위험 작업장의 중독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직업병 역학과 중독질환 전문가인 최원준 교수가 위험 작업장의 중독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최원준 교수는 “이번 시안이온 사건은 의사가 중독을 의심하고 화학물질 검사를 하지 않았으면, 즉시 사업장 조사를 하지 않았으면, 밝혀지지 않고 넘어갔을 것”이라며 “직업성 급성중독 질환의 예방과 관리를 위해 직업성 급성중독 감시체계를 확대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업병 역학과 중독질환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최 교수는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산재 발생이 크게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급성중독질환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서 “급성중독질환 자체의 의학적 특성을 고려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도금사업장 근로자의 시안화합물 중독 사망 사고의 경위와 문제점은.

“일명 청산가리로 불리는데, 소량만 체내에 들어오더라도 세포가 질식하게 되어 저산소증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도금작업을 할 때 시안화합물에 노출되어 중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 사례의 경우는 자칫 시안화합물 중독이라는 사실도 놓칠 뻔 했다. 사고를 당한 근로자는 의식을 잃은 채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함께 온 동료근로자는 사고를 당한 근로자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고를 당한 근로자는 사고 전날까지는 포장이나 자재 운반, 작업장 주변 청소 등 도금 작업 외에 다른 업무를 했었다. 사고가 발생한 날 오전에 시안화합물을 처음 다루었다. 응급실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도금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는 점을 알았다면 초기 응급치료 방향을 빨리 설정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가천대 길병원 응급실 의사들은 직업성 급성중독질환에 대해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곧바로 시안화합물 중독을 의심하고 관련 검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시안화합물 중독을 확진할 수 있었다.”

―이번 사례와 유사한 화학물질 중독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직업성 급성중독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환경관리이다. 즉 작업장 환경에서 유해요인을 잘 관리해서 유해요인을 없애거나 노출을 줄임으로써 발병을 예방하는 것이다. 둘째는 조기발견이다. 근로자 건강진단이 여기에 해당한다. 작업 중에 유해요인을 취급하는 경우에는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음으로써 건강의 이상소견을 빨리 발견하고 중한 질환이 되기 전에 조치할 수 있다. 셋째는 발병자 관리이다. 즉 근로자가 환자로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을 때, 그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동시에 이것이 직업병이라는 것을 빨리 인지하고 다른 피해가 추가적으로 발생하거나 같은 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세 가지 예방 및 관리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나.

“처음에 언급한 두 가지(환경관리와 건강진단)는 비교적 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는 반면, 마지막에 언급한 직업병 환자관리, 특히 급성중독 질환 환자에 대한 접근은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번 시안화합물 사망사건과 메탄올 중독 실명 사례는 같은 맥락이다. 처음 병원에 갔던 환자가 메탄올 중독 환자라는 것을 빨리 알고 조치를 취했다면 추가적인 피해는 막을 수도 있었다. 관련 진료과, 특히 응급의학과와 직업환경의학과의 연계가 직업성 급성중독질환의 관리에 보완이 시급한 부분이다.”

최 교수는 임상의학 진료의사들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산업보건전문가들의 네트워크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임상의학 진료의사들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산업보건전문가들의 네트워크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성중독질환이 발생할 겨우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급성중독이 발생했을 때 첫 번째(초기) 사례를 빨리 인지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여 동종의 사업장에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 첫 번째 사례를 빨리 인지하려면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와 일하는 사람을 살펴보는 산업보건전문가가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급성질환이 직업적으로 발생했는지, 같은 업종에서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빨리 판단하고 예방조치를 취할 수 있다.”

―임상의사와 산업보건전문가가 자연스럽게 소통하기가 어려운가.

“현재 국내의 의료시스템 하에서는 그렇다. 이것이 직업성 급성중독 관리체계를 구축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급성중독질환 환자가 방문하게 되는 응급실 및 임상과 의사들과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산업보건전문가들이 네트워크를 이루어 유기적으로 협업해야 한다. 그래야 작업 도중 발생한 급성중독질환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고, 동시에 이것이 직업성 질환임을 빨리 인지해서 같은 위험에 놓여있는 근로자에게 예방조치를 취하여 똑같은 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다.”

―현재 직업성 급성중독 관리체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지난 해부터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지원하에 직업성 급성중독 감시체계가 시범 운영 중이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이면서 공단이 많은 수도권 서부지역인 인천과 부천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가천대 길병원을 중심으로 4개의 대학병원급 의료기관(가천대 길병원, 인하대병원,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실과 임상과 전문의들이 참여하는 감시체계를 만들었다. 직업환경의학, 산업보건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응급실이나 진료실에서 환자를 진료할 때 근로자이면서 일을 하다가 병이 발생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질병의 전형적인 경과를 보이지 않고 재발하거나 악화되는 경우, 일반적으로 알려진 위험요인이 별로 없으면서 발생한 경우 등은 직업병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러한 환자를 진료하게 되면 감시체계 지역감시센터(가천대 길병원)로 보고하게 된다. 직업성 급성중독 의심환자가 인지되면 작업장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병력과 직업력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직업성 급성중독 감시체계를 운영할 때 중요한 것은.

“거듭 강조하지만 반드시 응급의학과를 비롯한 임상의학 진료의사들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산업보건전문가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협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응급실이나 진료실로 찾아오는 환자인 근로자에 대한 정보는 산업보건분야에서 먼저 알기가 어렵고, 근로자인 환자가 어떤 이유로 건강이 나빠졌는지를 임상의사들이 모두 다 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해야만 해결방법을 찾고 예방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인 비용을 고려하더라도 예방에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 훨씬 더 비용효과적이고 경제적이다. 올해까지는 시범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지만, 반드시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전국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작업장 중독 예방 수칙 및 조기 발견 대책은.

“직업성 급성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성이 높고 위험한 물질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면 유해물질이 작업자에게 닿지 않도록 해야한다. 밀폐설비를 이용해서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하거나, 적합한 환기설비를 갖추어서 작업작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개인보호구는 마지막 수단이다. 도움은 되겠지만, 완벽하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치료를 할 때 평소에 어떤 일을 하는지, 증상이 생기기 전에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를 의료진에게 잘 설명하면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일을 하면서 어떤 물질을 사용하고, 그 물질의 독성은 무엇인지, 작업장에는 어떤 유해요인이 있는지 관계자들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근로자의 관심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고 교육하는 것은 사업주의 책임(의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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