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중독 예방, 오감에 의존 말라

강성규 |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우리는 매일 보고, 듣고, 냄새를 맡으면서 삶의 맛을 오감(五感)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일터나 생활에서 발생하는 위험 또한 우선 오감으로 만난다. 일터에는 눈에 보이는 먼지가 있고, 화학약품 냄새가 나고, 시끄러운 기계소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감을 통해 위험을 쉽게 알 수 있다. 보이는 위험은 미리 대비해 예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터의 위험이 항상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술인술]화학물질 중독 예방, 오감에 의존 말라

최근 경인지역 소규모 사업장의 여성 근로자가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 근로자는 신혼의 단꿈을 꾸던 파견직 근로자로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도 못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메탄올은 무색의 투명한 공업용 알코올인데, 마시면 실명할 위험성이 있다.

메탄올에 의한 실명은 위장관으로 흡수될 때 흔히 나타난다. 공기 중의 메탄올을 폐로 호흡해 실명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래서 처음 메탄올 중독에 의한 시력손상이 발생했다고 알려졌을 때 전문가들조차 반신반의했다.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이 사업장의 공기 중 메탄올 농도는 정부가 제시한 관리기준값의 5~10배로 높았다. 관리기준값은 근로자가 수십년간 일을 할 때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 수준의 농도를 말한다.

기준값보다 5배나 높은 작업장에서 근로자들은 왜 그냥 일을 했을까? 메탄올의 위험성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모든 용기마다 메탄올의 위험성을 표기하고 취급 요령 및 유해성에 대해 교육했으면 낫지 않았을까? 불행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유해성을 알았어도 그냥 일을 했을 것이다. 공기 중에 메탄올 농도가 높아져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탄올의 공기 중 관리기준값은 200ppm이다. 냄새를 인식할 수 있는 농도(냄새역치)는 2000ppm 이상이다. 즉 건강장해를 크게 일으킬 수준에 노출되기 전에는 냄새를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메탄올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얼마만큼 노출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물과 현상을 오감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사고는 이처럼 오감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2005년에 노트북 부품공장에서 태국인 근로자들이 화학물질(노말헥산)에 의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집단 중독사건이 발생했다. 노말헥산의 관리기준은 50ppm이지만 냄새역치는 200ppm이 넘는다. 건강에 해가 되는 관리기준값의 4~5배에 노출됐는데도 근로자들은 위험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처럼 상당수 화학물질은 독성을 알아도 어느 정도 노출되는지는 알 수 없다.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심각한 질병에 걸린다. 그래서 직업병은 자신이 왜 질병에 걸렸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스티렌이란 물질은 관리기준이 20ppm이지만 1ppm 내외에서 냄새가 난다. 이 물질을 사용하면 주변에 냄새가 진동한다. 혹시 화학물질에 의한 건강장해가 있을까 염려하지만 관리기준값 이내이면 별다른 이상은 거의 없다.

화학물질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오감을 버려야 한다. 유해성은 오감과 일치하지 않는다. 먼지가 눈에 보이지 않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반대로 먼지가 보인다고, 냄새가 난다고 높은 농도에 노출되거나 건강장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화학물질은 사람의 오감으로는 독성의 정도를 알 수 없다. 독성이 있는 물질을 사용한다는 사실만 안다는 것으로 중독을 예방할 수는 없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고, 냄새가 난다고 유해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다.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서는 법에 정해진 대로 공기 중의 농도를 주기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작업방법이나 사용물질이 바뀌거나 작업량이 많아지면 작업환경을 측정해야 한다. 특히 냄새역치가 높은 화학물질은 공기 중 농도를 측정해야 한다.

근로자의 오감에 의존하지 말고 실제 노출되는 농도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치명적인 후유증을 초래하는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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