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의 ‘힙한’ 만남이 뉴 트렌드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3 15:00
  • 호수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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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으로 맞붙은 경쟁기업들…젊은 세대 잡기 위해 콜라보에도 적극적

추억을 끄집어낸다. 그것은 ‘그때 그 시절’을 겪었던 이들에게 향수를 준다. 오래됐지만 새롭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무언가를 늘 열망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흥미를 준다. 그래서 기업들은 ‘과거’를 빌려 ‘현재’를 팔기로 했다. 그렇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라는, 만날 수 없었던 두 가치가 접목돼 하나의 트렌드가 만들어졌다. 일명 ‘뉴트로(New+Retro)’. ‘요즘옛날’이라는 말까지 탄생시키면서, 그리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는 뉴트로 마케팅이 대세가 됐다.

과거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를 정확하게 찾아 재가공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 기업들은 과거의 기록들을 꺼내들며 맞붙기 시작했다. 가전업계의 영원한 맞수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대표적이다. 금성사 시절인 1968년 골드스타 브랜드로 창문형 에어컨을 국내에 처음 선보인 LG전자는 그 시절 제품에 얽힌 사연을 찾기 시작했다. 골드스타 에어컨과 관련된 사연을 보내온 고객을 선정해 최신 에어컨으로 바꿔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오래된 역사’인 골드스타 에어컨을 현재의 마케팅 수단으로 꺼내든 것이다. 골드스타 에어컨을 발견해 SNS에 공유하는 고객들에게는 자체 제작한 ‘복고풍’ 골드스타 유리컵과 에코백을 증정하기로 했다.

LG는 2019년 ‘한국인의 세탁’ 온라인 광고를 통해 국내 최초의 세탁기인 백조세탁기를 재조명했다.
LG는 2019년 ‘한국인의 세탁’ 온라인 광고를 통해 국내 최초의 세탁기인 백조세탁기를 재조명했다.
LG는 2019년 ‘한국인의 세탁’ 온라인 광고를 통해 국내 최초의 세탁기인 백조세탁기를 재조명했다.
삼성전자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뉴트로: 별세계 갬성’ 영상 ⓒ삼성전자

삼성과 LG가 과거를 꺼내든 배경

삼성은 신시대의 산물인 유튜브를 통해 오래된 역사를 건져 올렸다. 삼성전자는 7월6일 유튜브를 통해 ‘오래된 핸드폰을 고집하는 한 사람의 특별한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아버지의 유품인 애니콜이 고장 나 서비스센터를 찾은 한 남성의 이야기다. 그는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아 지방 창고에 남아 있는 부품을 찾았고, 마침내 고장 난 휴대폰을 고쳐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게 됐다. 삼성은 1975년 출시한 흑백 TV인 ‘이코노TV’를 경기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 전시하고, 해당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기도 했다. 영상에는 “입장료를 5원씩 받고 입장하면 TV를 틀어주던 추억이 있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LG와 삼성의 이 같은 행보는 역사 속 히트 상품에 얽힌 소비자의 추억들을 활용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의도가 있다. 기업의 최대 난제는 소비자의 신뢰 확보다. 대표 제품과 관련된 스토리를 통해 소비자들의 신뢰가 긴 역사에서 이어졌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앞으로도 단순한 과거의 재현을 넘어, 역사적 가치가 살아 있고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공간과 제품이 차별화에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사의 진보한 기술력을 부각시키겠다는 의미도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해당 광고 영상을 통해 “지난 40년간 TV의 역사를 새로 쓰다 못해 이젠 TV까지 ‘세로’로 만들어버렸다”며 발전된 기술력을 강조했다. LG가 지난해 세탁기 사업 50주년을 맞아 공개한 ‘한국인의 세탁’ 온라인 광고 역시 기업의 역사와 기술력을 강조한 것이었다. 배우 최불암씨가 ‘백조세탁소’라는 오래된 세탁소를 방문하면서 시작되는 영상은 LG역사관에 보관돼 있는 백조세탁기를 보면서 세탁기가 생활필수품이 됐음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1980~90년대 감성을 담은 맥심 광고 ⓒ맥심
1980~90년대 감성을 담은 맥심 광고 ⓒ맥심

‘이유 있게’ 옛날 옷 입은 음료업계

식음료 트렌드도 과거로 향하고 있다. 과거에 판매했던 제품의 포장이 다시 등장하면서 그 시절을 회고하게 한다. 오렌지 음료수를 마시고 난 후 보리차를 담는 물병으로 활용됐던 델몬트 주스 병을 기억하는가. 1987년에 최초로 등장한 이 유리병은 1980년생 이후 세대에게는 추억의 물건으로 꼽힐 정도로 가정집에서 애용했던 물건이다. 델몬트 주스 병은 지난해 뉴트로 열풍을 타고 추석 선물세트에 포함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올해 초 ‘델몬트 레트로 에디션’으로 재등장했다.

커피믹스의 원조, 동서식품 맥심이 지난 4월 한정판매한 ‘맥심 커피믹스 레트로 에디션’도 추억을 소환하면서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과거 커피를 사면 사은품으로 증정했던 동서식품의 보온병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필수품이었다. 추억의 ‘빨간 보온병’이 에디션에 포함됐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옷을 입고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서재에 앉아 “머그에 마시면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말하는 배우 공효진의 모습, ‘에디-숀’ ‘-트’ ‘있읍니다’ 등 과거 맞춤법들을 사용한 문구 등으로 레트로 감성을 저격했다.

파스퇴르와 서울우유는 우유에 원조 디자인 패키지를 다시 입혔다. 파스퇴르는 노란색과 녹색, 빨간색, 파란색 등 원색으로 이뤄진 과거 ‘파스퇴르 후레쉬우유’의 옷을 현재로 가져왔다. 서울우유도 창립 83주년을 기념해 우유 팩 하단에 물방울 모양이 디자인된 ‘레트로팩’ 제품을 최근 선보였다. 파스퇴르와 서울우유는 두 레트로 제품의 가격(2600원, 1930원)도 10년 전으로 인하하는 마케팅을 하면서 과거로의 회귀를 장려했다.

오비맥주는 맥주 ‘오비라거’를 뉴트로 제품으로 선보였다. ⓒOB
오비맥주는 맥주 ‘오비라거’를 뉴트로 제품으로 선보였다. ⓒOB

콜라보로 밀레니얼 세대 공략

주류업계는 과거의 정통성에 현대적 재해석을 더해 맞붙었다. 지난해 등장한 두꺼비와 랄라베어는 ‘뉴트로=성공’이라는 공식을 입증했다. 소주 겉면에 두꺼비표가 있어 과거 ‘두꺼비 술’로 불렸던 진로의 정통성을 되살리기 위해, 하이트진로는 진로소주를 재출시하면서 두꺼비에 특히 공을 들였다. 올해로 67살인 이 두꺼비가 하이트진로의 성장을 견인했다. 출시 2개월 만에 목표 판매량 1000만 병을 초과 달성하고, 7개월 만에 1억 병, 13개월 만에 3억 병 이상을 판매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기성세대뿐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의 술자리로까지 진입했다.

1970~80년대 제품 패키지의 병 모양과 색깔을 복원하면서도 최근의 음주 문화에 따라 도수를 낮췄다. 여기에 1980년대 주점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현한 팝업스토어 ‘두꺼비집’을 한시적으로 운영하면서 뉴트로 콘셉트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던 것 역시 다양한 세대 공략에 주효했다. 추억의 뽑기 게임, 추억의 간식 등을 즐길 수 있는 이 공간은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복고적 감성의 재미를 제공했고, 진로라는 브랜드의 인지도를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비맥주도 지난해 10월 40살 먹은 곰을 소환했다. 동그란 얼굴에 야구모자를 쓴 랄라베어는 1980년 탄생한 캐릭터로, 프로야구단 OB 베어스의 마스코트였다. 당시 신문 지면에는 거품 가득한 생맥주 잔을 안고 있는 랄라베어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했다.

랄라베어가 호프 잔을 들고 춤을 추는 모습을 비롯해 ‘오비-라거’ ‘라가-비야’ 등 깨알 같은 디테일을 지닌 복고 감성 문구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인 오비맥주의 마케팅은 오비라거를 기억하는 중장년층과 2030 소비자들의 뉴트로 감성을 저격했다. 건대입구와 송파 먹자골목 등 2030세대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열린 팝업스토어 ‘오비-라거 부드러움 연구소’는 랄라베어의 대형 이미지와 ‘여기라곰~’ 등의 표현들로 단장해 여러 즐길거리를 선보였다.

오비맥주는 게스와 손잡고 모자와 티셔츠 등 콜라보 제품을 내놨고, 하이트진로는 최근 KT와 손잡고 인공지능 스피커 '기가지니X진로 썸머 스페셜 패키지'를 선보였다. ⓒ게스·KT
오비맥주는 게스와 손잡고 모자와 티셔츠 등 콜라보 제품을 내놨고, 하이트진로는 최근 KT와 손잡고 인공지능 스피커 '기가지니X진로 썸머 스페셜 패키지'를 선보였다. ⓒ게스·KT

단순한 ‘추억 팔이’가 아님을 입증하듯, 젊은 세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콜라보레이션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은 이색 업종의 협업 상품에 대해 신선함과 호기심을 느끼고,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정보를 확산시킨다. 두 주류기업이 자사의 캐릭터들을 활용해 콜라보에 나선 이유다.

‘두꺼비 굿즈’까지 내놓은 하이트진로는 의류 브랜드 커버낫과 협업해 의류와 잡화 등을 출시했고, 최근에는 KT와 손잡고 인공지능 스피커 ‘기가지니X진로 썸머 스페셜 패키지’를 선보였다. 오비맥주는 패션 브랜드 게스와 손잡고 모자와 티셔츠 등 협업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핵심 소비 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를 잡기 위해 식음료업계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콜라보로 바쁘다. 일화는 맥콜 한정판 슬리퍼 굿즈를 내놨고, 롯데칠성은 온라인 셀렉트 숍 29CM와 손잡고 ‘칠성사이다 70주년 디자인 굿즈’를 론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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