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모습으로 상상되는 현실 저편의 세계
OTT 서비스 성황: 우한 코로나 창궐 속 미디어 업계 현황

넷플릭스 OTT
▲OTT 서비스의 초자연주의 TV 시리즈 대표작,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세계.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되 기괴하게 왜곡된 방식으로 반영한다.
최근 전염성 폐렴인 우한 코로나로 인해, 극장가는 거의 개점휴업에 가까운 힘든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차라리 극장업체는 나은 편이다.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대부분인 까닭에 어느 정도의 침체기는 버틸 수 있다. 대규모 제작사 및 배급사들도 전염병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개봉과 마케팅을 미루는 식으로 어려운 시기를 대처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자본력이 열악한 중소규모 제작사들이다. 투자금 회수를 위해 촬영된 작품의 개봉을 미룰 수가 없는데, 상영관에는 관객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3월 극장가는 기대작 개봉은 미뤄지고 중소형 제작사의 저예산 작품들만 개봉되면서 그 침체의 깊이가 더해지고 있다.

극장가의 이런 힘든 상황과는 달리, OTT(Over The Top) 서비스(넷플릭스, 유튜브, 훌루 등 온라인/모바일 기반 미디어 서비스)는 최대 성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삼가고 스스로를 거의 격리하다시피 하면서 지내는 것이 일상화됨에 따라, 셋톱박스 기반 미디어 서비스(케이블, 위성 TV)나 온라인/모바일 기반 OTT 서비스에 대한 문화 콘텐츠 소비자들의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케이블/위성 TV가 아니라 OTT 서비스를 선택하고 있다.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보고 싶은 시간에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콘텐츠 종류가 훨씬 다양할 뿐 아니라 퀄리티 역시 뛰어나다는 점이 OTT 서비스를 선호하는 이유일 것이다.

OTT 서비스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넷플릭스의 콘텐츠 동향을 보면, 기독교인 입장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최근 들어 초월적-영적 세계를 새로운 모습으로 상상해 묘사하는 콘텐츠가 급증했고, 이런 작품들이 최상위권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2016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TV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2016-)를 들 수 있다. 정부의 비호를 받는 한 단체의 비밀 초능력 실험을 통해 다른 차원과의 길이 열리고, 이 통로를 통해 나온 괴기스러운 존재들로부터 받는 생존의 위협을 헤쳐 나가는 시골 마을 가족들과 친구들의 모험이 전체 플롯을 구성하고 있다.

이 작품은 최근까지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시청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이 <기묘한 이야기>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듯 그와 유사한 작품들도 간간이 제작되고 있다.

<비욘드>(Beyond, 2017-2018)나 <로크 앤 키>(Locke & Keys, 2020-)같은 작품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비욘드>는 식물인간 상태의 영혼만이 들어갈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로크 앤 키>는 마법적 힘이 들어간 열쇠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그려낸다.

이 TV 시리즈들의 공통점은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으면서도 신비스럽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그려내고, 이러한 세계로부터 오는 위기를 극복하고 현실의 삶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가족애, 우정, 사랑을 바탕으로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초월적인 세계로부터 오는 공포와 죽음을 막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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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 이면 세계를 다룬 넷플릭스의 최신작, <로크 앤 키>의 한 장면.
OTT 서비스 속 초자연주의: 기독교 내세관에 뿌리를 둔 초자연주의 세계관

이처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이 작품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종교적 본성, 즉 초월적 세계를 향한 열망을 자극하고 부추기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참신하면서도 정교한 형태의 이면(異面)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매료시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작품들이 유독 미국 문화계를 통해 제작되고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본력 때문만은 아니다. 실상 넷플릭스가 투자한 작품들 가운데는 미국에서 제작되는 영화나 TV 시리즈보다 더 많은 예산을 소요한 다른 국가의 작품들도 자주 발견된다.

한국만 보더라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Okja, 2017, 제작비 600억), <미스터 션샤인>(2018, 제작비 430억), <킹덤>(2019, 제작비 200억) 등은 넷플릭스에서 전부 혹은 대부분의 제작비를 댄 고예산 작품들이다.

하지만 넷플릭스 전체에서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작품들, 특히 초자연 세계를 다룬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나 TV 시리즈이다. 이는 그만큼 미국 문화계가 초월적이고 영적인 세계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성향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당연하게도 내세에 대한 기독교 신앙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기독교 문화는 애초 성경이 가르치는 내세에 삶의 의미와 가치를 두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 신학이 플라톤이 가르치던 예지계(noumena, 신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초월적 진리의 세계)에 대한 서구인들의 열망을 포섭해 발전시키면서, 기독교 문화의 초월적 세계관은 이중으로 강화되었다. 미국발 OTT 서비스에서 확인되는 확고한 초자연주의는 바로 이런 종교사상적 배경을 갖고 있다.

넷플릭스 OTT
▲초월적 이면 세계를 다룬 TV 시리즈 <비욘드>. 주인공들이 바라보는 세계는 현실과 맞닿아 있으면서 현실을 뛰어넘는 초월적 세계이다. 이런 세계관의 사상적 뿌리는 기독교적 내세관이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해 미국의 저명 기독교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서구인들의 문화 사상을 분석하면서, 기독교 신학과 플라톤주의의 만남이 현실 세계와 ‘이상적인’ 세계의 만남에 대한 열망을 확고하게 했으며 이것이 서구인들의 자기이해와 세계관 전체를 지배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초자연주의를 지향하는 OTT 서비스 작품들은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일정한 순기능을 갖고 있다. 이런 콘텐츠는 자라나는 세대 가운데 아직 성경이 가르치는 내세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그것을 믿지 않는 이들이 유물론과 과학주의에 심취하는 것을 막아주고, 초월적-영적 세계의 존재를 수긍할 수 있도록 종교적-문화적 상상력을 키워준다.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라난 이들 중 상당수는 초월적 창조주와 영혼, 내세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을 갖추지 못해서, 자기 나라를 벗어나서까지도 기독교 선교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문화적 배경 때문에 원천적으로 영혼과 내세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된 이들을 염두에 둔다면, 오늘날 세계 미디어 콘텐츠 업계를 지배하는 OTT 서비스 업체들이 기독교적 세계관과 내세관에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는 초자연주의 콘텐츠들을 널리 흥행시키고 있는 점은 기독교인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콘텐츠들이 순기능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순기능에 못지 않은 심각한 부작용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나 TV 시리즈들이 갈수록 그 뿌리인 기독교적 내세관의 세부 내용들을 배제한 채, 오직 자연적 현실과 초자연 세계 사이의 이원적 대립에만 집착하는 사고의 틀을 강화한다는 점이 가장 문제시되는 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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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의 한 장면. 자연적 현실과 초자연적 차원의 조화가 아니라 이원적 대립과 투쟁만을 부각시키는 점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큰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