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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시대 유통 새 문법 ‘미디어커머스’ 기획에서 판매까지… 품질 위주로 시장 재편 중

강인선 기자
입력 : 
2020-03-04 14:13:00
수정 : 
2020-03-07 08: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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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부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 보면 독특한 영상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모공 하나하나를 채워주는 파운데이션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밀감 껍질 위에 화장품을 바르는가 하면, 화장 후 늘 고민거리였던 브러시를 시원하게 세척해주는 기기 등이 짧은 광고 속에 등장했다. 20대 여성인 기자의 SNS에는 이런 콘텐츠들이 재생됐지만 40대 남성에게는 잠이 잘 오는 베개, 부위별로 마사지가 가능한 마사지기 등 상품이 같은 유형의 동영상으로 재생된단다.

이 모든 것들이 2015년부터 SNS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미디어커머스’ 기업들의 작품이다. 블랭크코퍼레이션, 데일리앤코, APR 등 대표적인 기업들의 주도로 성장하기 시작한 미디어커머스 시장은 아직은 초기단계지만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디어커머스 시장의 무게 중심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콘텐츠’, ‘바이럴’에서 ‘브랜드’와 ‘제품력’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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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럽 퓨어썸
▶기획부터 판매까지 다 하는데

영업이익 내는 미디어커머스

미디어커머스의 핵심은 전통적인 유통채널의 순서를 뒤바꿨다는 데 있다. 전통적인 유통업의 구조는 ‘제품 기획→제조→마케팅→판매’ 정도로 단순화할 수 있다. 미디어커머스는 마케팅과 판매 단계에서 나오는 소비자의 반응을 모아 거꾸로 기획 단계에 활용한다. 과거에도 전혀 없었던 일은 아니다. 제조업체와 시장을 연결하는 유통채널 MD들이 전통적으로 이 역할을 수행했다. 식품 MD가 “손님들이 초코맛 말고 바나나맛 우유는 없냐고 자주 묻는다”는 피드백을 제조업체 측에 전달하면 신제품으로 바나나맛을 내는 식이다.

SNS나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은 기업이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무한한 접점이 됐다. 사람을 통해 비정기적이고 느슨하게 전달되던 피드백은 이러한 디지털 창구를 통해 더 정교하고 정기적으로 분석될 수 있게 됐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소비되는 콘텐츠가 사진과 영상이다 보니 미디어커머스 시장이 처음 형성될 때는 ‘영상으로 소개됐을 때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는 콘텐츠’들이 집중적으로 판매됐다. 제품을 사용하기 전과 후의 변화가 시각적으로 명확하다거나 앞선 밀감의 사례처럼 제품의 효과를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는 콘텐츠는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미디어커머스가 ‘V(비디오)커머스’, ‘콘텐츠커머스’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개념으로 여겨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오히려 시장의 핵심이 유통의 체계를 바꿔놓은 데 있다고 설명한다.

미디어커머스 기업들은 기획부터 판매까지 모든 단계를 직접 운영하지만 대부분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판매자와 소비자를 중개하며 몸집을 불렸지만 정작 영업이익을 내는 플레이어는 거의 없는 국내 이커머스 업계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데일리앤코 관계자는 “제조·기획 단계에서 한 번, 판매 단계에서 또 한 번 중개의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조업체가 기획한 제품을 가져다 팔려면 그 가격에는 결국 제조사의 연구개발 비용과 제품 기획 비용이 포함된다. 이렇게 떼 온 물건을 홈쇼핑이나 백화점, 마트 등 전통 채널에서 판매하려면 20~35%의 유통마진을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 미디어커머스는 이 두 가지 과정을 내재화하는 동시에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이윤을 남기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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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도 뛰어들었다… 홈쇼핑, 미디어커머스 투자 활발

미디어커머스가 새로운 유통방식으로 부상하면서 전통 유통 대기업들도 미디어커머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영상 콘텐츠에 최적화된 홈쇼핑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CJ ENM은 5년 전 사내벤처 형식으로 V커머스 조직인 ‘다다스튜디오’를 만들었다. 뷰티·리빙·토이·푸드·트렌드와 ‘1분 홈쇼핑’ 등 6개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2018년에는 ‘다다스튜디오 콘텐츠 통합 솔루션 상품’을 출시해 스튜디오가 지닌 광고·마케팅 역량을 다른 방송 채널의 콘텐츠와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다스튜디오 관계자는 “미디어의 속성을 TV 중심에서 모바일로 전환하기 위해 모바일 라이브 등을 업계에서 많이 고민하고 있다며 (다다스튜디오에서도) 모바일에 적합한 상품을 어떻게 개발해서 판매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11월 미디어커머스 스타트업 ‘어댑트’에 40억원을 직접 투자했다. 어댑트는 뷰티·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랍셍스’, ‘푸드올로지’ 등을 보유한 회사로, 지난해 상반기 매출 200억원과 영업이익 27억원을 기록했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어댑트의 영상제작 능력이나 SNS상 마케팅 능력을 활용해 홈쇼핑 상품을 비디오커머스 형식으로 판매하는 협업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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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소비자들의 피드백, 어떻게 제품 기획에 녹이나?

온라인상에 매일 수억 건씩 올라오는 고객들의 피드백을 제품 기획 단계에 녹이는 과정은 간단하게 설명하기 쉽지 않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은 이 과정을 보다 개념화하기 위해 ‘프로덕트 스코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니즈’ ‘대중성’ ‘공감’ ‘설득력’ ‘글로벌 기준’ ‘콘텐츠 스코어’ 등 6가지 기준으로 나누어 상품 기획 단계에서 아이템의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블랭크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이러한 방식으로 상품 기획 단계에 접근하면 소비자의 니즈가 크거나 공감의 요소가 있고, 디지털 판매로 적합함에도 불구하고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출시되지 못했던 제품들이 탄생한다”고 설명했다. 블랭크코퍼레이션에서 프로덕트 스코어를 염두에 두고 상품을 기획하는 인력은 전체의 30%가량인 30여 명이다. 각 기준별로 가중치는 제품마다 다르다. 신제품 출시 속도는 창업 초기에 비해서는 다소 둔화돼 평균적으로 1달에 2개의 신제품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하고 있다.

데일리앤코 역시 연구개발부터 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스토어를 만드는 과정 전체에 마케팅적 분석이 들어간다. 데이터 기반의 마케팅 대행사 에코마케팅이 모기업인 만큼 타깃 소비자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접근한 뒤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이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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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페이스북 로직 강화로 지각변동

‘제품력’으로 시장 회귀

지난해부터 미디어커머스 기업들을 긴장시키는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주 활동무대로 삼아온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과장광고나 선정성에 대한 기준을 강화한 것이다. CJ ENM 다다스튜디오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특정 신체부위가 노출된 영상은 게재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 등 기준이 강화됐다”며 “과장광고를 한 제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플랫폼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식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데일리앤코 관계자 역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구매자에게 만족도 조사를 자체적으로 실시해 점수가 너무 떨어지는 경우 페이지 운영에 제한을 두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는 SNS를 활용한 커머스의 성장과 함께 꼬리표처럼 따라온 과장광고 논란과 맞닿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6월 SNS 마켓 유명 인플루언서에 대한 판매 제품 점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허위·과대광고 행위를 점검해 1930개 판매 사이트를 적발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차단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제품을 오인·혼동시키거나 소비자들로 하여금 질병의 예방과 치료 효과가 있다고 믿게 만든 허위·과대광고가 대부분이었다. 단속 대상이었던 다이어트 제품들도 미디어커머스와 유사한 방식인 후기 형식의 영상 콘텐츠로 마케팅이 이루어졌기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SNS상의 커머스 자체에 대한 불신이 퍼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올해부터는 미디어커머스에서 콘텐츠보다는 ‘제품력’이 강조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믿거페(믿고 거르는 페이스북)’라는 불명예스러운 단어가 생길 정도로 호락해졌던 SNS커머스 시장이 정리되고, 어느 정도 제품력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제품력이 떨어지는 상당수 기업들이 최근 1년 사이 영업을 포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SNS에 올인할수록 리스크가 커진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전체적인 마케팅을 강화하는 시장 움직임도 감지된다.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은 ‘브랜드’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는 브랜드와 상관없이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제품을 제공해주는 미디어커머스의 초기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미디어커머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블랭크코퍼레이션’이나 ‘바디럽(마약베개가 속해 있는 블랭크코퍼레이션의 브랜드)’은 몰라도 마약베개가 숙면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 믿고 구입해왔다. 이제는 바디럽, 클럭, 몽제 같은 브랜드를 앞세운 커뮤니케이션에 힘을 주겠다는 설명이다. 미디어커머스 업계가 제품 위주의 시장에서 브랜드로 회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은 이를 위해 지난해 조직의 방향을 바꿨다. 히트 아이템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제품 위주의 조직에서 브랜드와 콘텐츠 조직으로 구성을 달리한 것이다. 데일리앤코 역시 ‘클럭’과 같은 메가 히트 브랜드를 2번째, 3번째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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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아 데일리앤코 대표 인터뷰 “모든 기업, 데일리앤코처럼 ‘디지털 문법’ 배워야 할 것” “데일리앤코는 요즘 핫하다는 미디어커머스로 불리기보다는 ‘나이키’같이 소비자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는 브랜드를 보유한 최고의 마케팅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달 초 서울 서초구 ‘데일리앤코’ 사옥에서 만난 공성아 대표는 회사의 핵심 역량이 SNS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미디어커머스는 제품 자체보다는 제품을 소개하는 동영상 콘텐츠를 ‘빵 터뜨려’ 화제를 일으키고, 제품 구매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유통 형태에 가까웠다.

공 대표는 “우리가 잘하는 건 SNS 콘텐츠뿐만 아니라 포털, 유튜브, 모바일 등 디지털 공간에서 획득할 수 있는 소비자의 행동과 제품 피드백 데이터를 활용해 제품 기획부터 판매까지 완수하는 ‘디지털 마케팅’”이라며 “제조 공장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OEM(주문자 상표부착 생산)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지만 브랜드와 제품 기획력, 마케팅 역량을 기반으로 오랜 시간 시장 상위권을 유지하는 나이키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공 대표는 2003년 설립되어 2016년 코스닥에 상장된 온라인 종합 광고대행사 ‘에코마케팅’의 공동 창업자다. 온라인을 통한 마케팅과 유통이 활발하지 않았을 당시부터 고객사였던 많은 기업들에게 온라인에서 획득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 마케팅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했다. 2017년 에코마케팅이 데일리앤코를 인수하면서 공 대표는 이듬해부터 데일리앤코를 이끌어왔다.

공 대표는 디지털 네이티브가 주 타깃이 될 앞으로의 시장에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기업이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마케팅으로의 전환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과거에는 대형마트, 홈쇼핑 등 대형 유통채널에 제품을 입점시키고 TV 광고를 해야 기업들이 소비자를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디지털 채널들이 무수히 많아졌다”며 “소비자와 소통하고 만나는 장소와 방식이 완전히 바뀐 만큼 이 문법을 익힌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인선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4호 (2020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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