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기업

[Insight] 요즘 핫한 복고 마케팅…`브랜드 헤리티지` 없다면 무용지물

입력 : 
2020-02-20 09:33:39
수정 : 
2020-02-23 07:51:18

글자크기 설정

장수 브랜드 역사·철학·가치
무형의 유산 자체가 강력한 힘
뉴트로마케팅이 대세 된 까닭

70주년 칠성사이다 광고처럼
소비자 추억·공감과 결합되면
광고 재활용마저 반가운 재회
사진설명
위에서부터 나이키 'Better World' 캠페인, 롯데리아 레전드 버거, 칠성사이다 70주년 광고.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매주 일요일 오전에 방영되는 'TV쇼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반인들이 소장한 고미술품 중 진품과 명품을 발굴해 전문 감정위원이 가치와 진가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우리 문화재를 다루는 교양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층이 탄탄해서 25년째 방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의뢰인들의 소장품에 담긴 사연을 들으면서 출연자들과 함께 감정가격을 유추하고 감정위원단이 평가한 진가를 확인하는 데 있다. 때때로 명품 고려청자나 대동여지도 채색본 같은 국보급 문화재가 등장해 눈 호강을 하기도 한다. 진품명품에 등장하는 의뢰품처럼 오랜 시간 브랜드와 제품이 소비자의 사랑을 받다 보면 그 자체가 해당 산업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화제의 '기생충'과 함께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 '포드 V 페라리'를 보면 유럽과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르망24 레이스에 도전하고 우승한 경험을 얼마나 큰 유산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르망 레이스에서 누가 우승하느냐에 따라 자동차 산업의 역사도 새로 쓰였듯 오래된 브랜드들의 탄생 배경, 철학, 이력 등을 보면 그 브랜드가 지닌 무형의 가치가 보인다.

"이 영상은 기존 광고를 100% 재사용했습니다." 2011년 나이키가 '더 나은 세상(Better World)'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전파를 탄 광고는 이런 카피로 시작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한창 화두가 되면서 나이키 또한 친환경, 자원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 만들기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기존 광고들을 리사이클링하는 전략으로 공익적인 메시지를 재치 있게 전달한 것이다. 나이키는 오랜 기간 TV 광고를 통해 장애·인종·성별 등을 뛰어넘어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정신을 강조했는데, 덕분에 지난 광고의 장면들을 재편집하는 것만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도전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광고 한 편이 탄생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산업화 시기가 늦었던 우리나라는 이처럼 브랜드 헤리티지를 강조하는 캠페인이 그동안 흔하지는 않았다. 몇 해 전부터 복고에 현대적인 감각을 조합한 '뉴트로(Newtro)'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장수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과거 로고와 패키지를 재현하거나, 예전 모델을 재기용하고 더 나아가 단종된 제품을 재출시하는 등의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롯데리아에서는 40주년을 맞아 소비자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추억 속 버거를 선정하는 온라인 투표 이벤트를 진행했다. 과거에 단종된 제품 중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햄버거를 선정해 한정 기간 재출시하는 행사였다. 오징어 버거, 라이스 버거 등 각 버거를 지지하는 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공유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등 자발적인 투표 운동이 일어나면서 두 달간 약 189만표를 모았다.

이처럼 브랜드 헤리티지를 마케팅에 활용할 때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캠페인 메시지가 일방적이면 기업 입장에서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뿐, 모두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브랜드의 역사만이 아닌 소비자와의 공감을 자극할 추억을 잘 이끌어내야 한다. 6·25전쟁 발발 직전 출시돼 대한민국 탄산음료 최초 70주년을 맞은 칠성사이다의 새로운 캠페인은 이 같은 소비자와의 공감에 포인트를 두었다.

티징편에서는 수십 년 동안 소비자들과 마주했던 사이다의 역대 광고 영상과 음악을 조합해 레트로적이지만 브랜드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담은 광고를 선보였다. 과거 CM송을 불렀던 가수 이선희를 다시 모델로 기용해 초록에서 투명하게 바뀐 페트병 제품을 보여줌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는 의미도 담았다. 본편에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칠성사이다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완행열차 속 카트에서 부모님이 사주시던 병 사이다에 설레는 추억. 아버지 월급날 동네 돼지갈비 집에서 가족들과 외식을 하며 칠성사이다 한잔에 행복을 채우던 추억. 이를 통해 진짜 사이다는 마트나 편의점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온라인에서는 칠성사이다 추억감정소 이벤트를 열었다. 이미 국민 브랜드인 칠성사이다를 알리기보다는 사이다와의 기억을 한번 떠올려 보자는 취지다.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사이다와의 추억을 접수하면 역사성·희소성 등을 기준으로 심사위원단이 감정해 최고가 추억을 시상하는 콘셉트다.

사진설명
다시 TV쇼 진품명품 이야기로 돌아가서, 보통 방송 후 화제가 되는 고가의 작품은 그림이나 도자기 같은 미술품류인데 얼마 전 민속품 보자기 하나가 꽤 높은 감정가를 받은 적이 있다. 의뢰인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인데 용도를 잘 모르겠다며 가져왔다. 좀 오래된 민속품인가 싶었는데 감정 결과 130년이 넘은 궁중 물건으로 밝혀졌다. 스튜디오에서는 탄성이 나왔다. 의뢰인도 앞으로 더 소중히 보관해야겠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소중하게 간직해온 물건과 거기 얽힌 이야기가 공유되고 가치를 인정받는 기쁨의 순간이었다. 최근 전성기를 맞고 있는 뉴트로 마케팅을 고민 중이라면 이것부터 생각해보자. 그동안 우리의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전해왔는지, 소비자는 그 브랜드에 어떤 이야기와 추억을 갖고 있을지를. [김정훈 대홍기획 어카운트솔루션12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