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마음도 훔치는 키즈 콘텐츠

김태훈 기자

어른들의 마음까지 훔치는 키즈 콘텐츠의 위력은 점차 막강해지고 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는 어린이들은 물론 성인 재관람 관객들의 확고한 지원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1000만 관객 영화 반열에 올랐다.

“키즈 콘텐츠는 국경도 없고, 연령 제한도 없는 게 매력이지요.”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씨(43)는 연말이 다가오자 매장에 틀어놓는 음악을 크리스마스 캐럴로 바꿨다. 인기가수의 곡들은 아니다. “아무래도 미국 캐럴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잘 살리는 느낌인데,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부르는 캐럴이 나한테는 제일 흥겹고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이씨는 미국의 여러 아동 보컬그룹이 성탄 시즌마다 내놓는 캐럴 앨범을 10년 넘게 모으고 있다. 대학 시절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우연히 접한 소년·소녀 합창단의 미성에 푹 빠진 뒤로 국내·외의 동요에까지 관심이 미친 것이다.

‘던질까 말까’라는 중독성 높은 노래로 성인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오뚝이 다트> 영상의 한 장면. 트니트니 유튜브

‘던질까 말까’라는 중독성 높은 노래로 성인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오뚝이 다트> 영상의 한 장면. 트니트니 유튜브

<아기상어>와 동요 <오뚝이 다트> 인기

국경을 넘나들며 동심은 물론 어른들의 마음까지 훔치는 키즈 콘텐츠의 위력은 점차 막강해지고 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는 어린이들은 물론 성인 재관람 관객들의 확고한 지원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1000만 관객 영화 반열에 올랐다. 비단 <겨울왕국 2>처럼 해외의 블록버스터급 콘텐츠만 국내로 유입되는 것도 아니다. <아기상어(상어가족)>는 빌보드 차트 30위권까지 진입한 뒤, 2019년 빌보드 연간 ‘핫 100’ 차트에서도 75위에 올라 국내 정상급 대중가수들도 쉽게 이루지 못한 ‘월드스타’의 입지를 확인했다. <아기상어>는 레바논 반정부 시위 현장 등 지구촌 곳곳에서 인기리에 불리는 등 올 한 해 국경을 넘는 키즈 콘텐츠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서 키즈 콘텐츠가 모든 연령대로 확산되는 유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는 영·유아 교육업체 ‘트니트니’에서 내놓은 동요 <오뚝이 다트>가 있다. ‘던질까 말까’로 시작하는 가사로 더 유명한 이 노래는 2015년 발표된 평범한 동요로, 지난해부터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는 했다. 그러나 보편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는데 올해 들어 유튜브 영상 제작자들 사이에서 이 노래를 몇 시간이고 무한반복하며 부르는 유행이 갑작스레 확산하면서 뒤늦은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펭수 캐릭터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동용 방송 프로그램 출연자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있지만 실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연령대는 중년층까지 아우르는 성인 시청자들이었던 것과도 비슷하다.

어른들이 키즈 콘텐츠에 열광하는 모습은 결국 구매력과도 관련이 있다. <겨울왕국 2>에 나오는 엘사의 드레스를 딸에게 사주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다 어느새 성인용 캐릭터 상품까지 사게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직장인 최현선씨(34)는 딸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겨울왕국 2>를 보자고 졸라 같이 보게 됐지만 정작 본인이 미처 보지 못했던 1편까지 챙겨보며 빠져버린 경우다. 그는 “엘사 드레스도 처음에는 딸 사주려고 검색했는데 막상 고르다보니 연관상품으로 뜨는 관련 굿즈 중에 내가 보기에도 예쁘다 싶은 물건들도 꽤 있어 그냥 눈 딱 감고 질러버렸다”고 말했다. 해당 영화의 캐릭터 상품은 다양한 연령대의 아동은 물론 성인 취향까지 고려해 소재와 디자인, 기능까지 미묘하게 변형을 주는 등 선택의 폭을 넓혀 소비자들의 지갑을 겨냥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국내 키즈 콘텐츠 시장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어도 키즈산업, 특히 키즈 콘텐츠 분야는 계속 확대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부모가 자녀 한 명에게 쓰는 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아이 한 명이 태어날 때마다 아이를 위해 소비하는 비용은 갈수록 증가해 2009년 270만원에서 2015년 548만원으로 연평균 12.5%씩 증가했다. 키즈 콘텐츠 업계의 순풍을 타고 국내 주요 기업들도 빠르게 성장했다.

<뽀로로>와 <꼬마버스 타요> 등을 제작하는 아이코닉스와 <아기상어>로 유명한 ‘핑크퐁’ 제작사 스마트스터디는 국내 1·2위를 굳건히 지키는 기업들로, 2015년 대비 2018년 매출액이 각각 17.3%, 6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30~40대 디지털 부모세대가 주도

이와 같은 성공의 배경에는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해진 부모세대가 나타나면서 자녀들에게도 영상 기반의 키즈 콘텐츠를 쉽게 제공하고, 부모들 역시 취향에 따라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환경의 변화가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 김현종 선임연구원은 “키즈 콘텐츠 주요 소비자인 영·유아를 키우는 30~40대 부모는 20대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하기 시작해 디지털 콘텐츠 이용에 매우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며 “최근 콘텐츠는 교육보다는 아이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에 중점을 두고 제작되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 쉽게 진출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아이들이 즐기는 콘텐츠가 세대의 벽을 허물고 꾸준한 인기를 얻는 이유를 단순함을 극대화한 중독성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지난 10월 걸그룹 모모랜드가 아동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주제곡 <바나나차차>를 버스킹 공연에서 선보인 것도 이 곡이 가진 중독성 때문에 마니아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어서였다. 아이들이 따라부를 수 있으면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다는 장점을 기본으로 갖췄기 때문에 2차 콘텐츠 생산의 주역이 되고 있는 유튜브 창작자들 사이에서도 주목을 끌게 된다. 한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사실 이전까지는 내용이 아이들의 시각에 맞고 한번 보면 꾸준히 볼 수 있게 유도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그런데 최근 성인 취향에도 잘 맞아 성공하는 사례들이 늘면서 일단 아동용으로 만들되 다양하게 변형·가공할 수 있는 쪽에 초점을 두는 시도가 자주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일단 재미있게 만들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지갑도 쉽게 열 수 있다. 그래서 키즈 콘텐츠 중 가장 주목도가 높은 영상 콘텐츠를 유통하는 기업들 역시 이 비중을 높이고 있다. 통신 3사의 인터넷텔레비전(IPTV) VOD 영상 가운데 키즈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SK브로드밴드 46%, LG유플러스 45%, KT 41%일 정도로 키즈 콘텐츠는 이미 전체 유료 영상의 절반 가까이 점령한 상태다. 산업연구원의 박지혜 연구원은 “키즈 콘텐츠는 해외로 진출할 때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랫폼을 바탕으로 거액의 마케팅 비용 없이 콘텐츠를 전 세계로 유통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현재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키즈 콘텐츠 시장이 질적으로도 성장하기 위한 더욱 다양한 구상도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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