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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도 교수가 꼽은 2020년 10대 소비 트렌드-팬슈머·초개인화·오팔세대…시장 세분화

  • 노승욱 기자
  • 입력 : 2019.11.04 10:41:42
  • 최종수정 : 2019.11.04 11:43:23
2020년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기업마다 새해 사업 계획과 예산안을 짜느라 바쁜 시기. ‘2020년에는 어떤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대한민국을 달굴까’에 모두의 관심이 모아진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신간 ‘트렌드 코리아 2020’을 통해 힌트를 찾아보자. 김난도 교수는 ‘멀티 페르소나’ ‘라스트핏 이코노미(Last Fit Economy)’ ‘페어 플레이어’ ‘스트리밍 라이프’ ‘초개인화 기술’ ‘팬슈머(Fansumer)’ ‘특화생존’ ‘오팔세대’ ‘편리미엄’ ‘업글인간’ 등 10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김난도 교수가 선정한 2020년 트렌드 첫 번째는 ‘멀티 페르소나’다. 회사와 집에서의 내가 다르고,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여러 계정으로 갈아타며 ‘다중 가면’을 쓰고 사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불티나게 팔리는 무선 이어폰 ‘에어팟’도 따지고 보면 다중 가면의 일종이다. 에어팟을 끼는 순간, 외부와 단절돼 엘리베이터에서 직장 상사를 만나도 인사를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적잖다고. 그러다가도 에어팟을 빼는 순간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온다. 일과 사생활의 구분이 더없이 분명해진다.

두 번째 트렌드는 ‘라스트핏 이코노미’. 이제 소비자는 상품의 특성이나 브랜드가 주는 객관적 가치보다 상품과 자기 생활의 ‘마지막 접점’에서 즉각 느낄 수 있는 주관적 효용을 중심으로 구매 의사를 결정한다. 제품의 품질보다 빠른 배송이 중요해졌고, 에어컨·냉장고 등의 설치 경쟁도 제품 경쟁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셋째는 ‘페어 플레이어’. 사회구조적 이슈로만 여겨졌던 공정함에 대한 열망이 이제 남녀 간, 세대 간, 지역 간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사노동은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돼야 하고 학생들은 주관식보다 객관식 시험, 조별 과제보다 개인 과제를 선호한다. 직장에서는 팀장을 서포트하기보다 나 자신의 성과로 평가받기를 원하며, 회사 대표와 팀 막내가 서로 반말로 의사소통하기도 한다. 소비할 때도 상품 자체뿐 아니라 그 브랜드의 ‘선한 영향력’이 구매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넷째는 ‘스트리밍 라이프’.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차도 집도 물건도 ‘소유’하지 않고 ‘경험’만 하면 된다.

덕분에 렌털이나 일정 기간 동안 돈을 지불하고 재화와 서비스를 추천받는 ‘구독경제’, 일정 기간 나눠 쓰는 ‘공유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다. 과거 음악 애호가들이 LP판으로 벽장을 가득 채웠듯, 스트리밍 소비자는 물 흐르는 듯한 경험으로 자신의 인생을 채운다.

다섯째는 ‘초개인화 기술’. 시장이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다. 아마존은 고객을 0.1명 단위로 나눈다. 같은 사람이라도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평일과 휴일에 소비 행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구분은 고객의 소비 패턴 정보를 24시간 수집·분석하는 빅데이터 기술이 있기에 가능해졌다. 이제 기업은 모든 개인을 구체화하고 더 자세히 접근해 회사가 개별 소비자에게 얼마나 세심하게 맞출 수 있는지 신경 써야 한다.

여섯째는 ‘팬슈머’. 팬덤(fandom)은 원래 ‘어떤 것(특히 연예인)에 대해 열정을 보이는 사람 또는 그 집단’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최근에는 좋아하는 행위를 제품 구입으로 증명하는 행동 전반으로 그 의미가 넓어졌다.

팬덤은 다시 팬슈머로 진화 중이다. 팬슈머는 한 대상에 일방적으로 애정을 쏟고 구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획하고 투자하며 때로는 견제도 하는 매우 적극적인 팬으로서의 소비자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세훈의 생일에 팬들이 비행기를 래핑해줄 정도로 그 힘이 강해졌다.

일곱째는 ‘특화생존’. 보다 정밀한 타기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특화 전략’이다. 소비자 니즈가 갈수록 파편화되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업들은 더 쪼개고, 나누고, 집중하는 데 여념이 없다.

가령 ‘요가복의 샤넬’로 불리는 ‘룰루레몬’은 ‘콘도 회원권을 소유하고 여행과 운동을 좋아하는 32세 전문직 여성’을 타깃으로 삼았다. 31세도, 33세도 아니다. 타깃이 얼마나 정밀한지 보여준다. 왼손잡이용·수험생용 안마의자, 패키지 여행 대신 ‘슬로우(slow) 여행’ ‘모녀투어’ 등 프랜차이즈지만 표준화 대신 개별화하는 것도 특화 생존의 예다. 2020년에는 니치(niche)해야 리치(rich)하다.

여덟째는 ‘오팔세대’. 청년처럼 소비하는 신(新)중년층이 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어느덧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의 나이가 됐지만 대한민국 성장의 주역답게 여전히 왕성한 사회활동을 이어간다. 과거와 달리 디지털 기술 활용에 능숙하고 최신 트렌드에 뒤지지 않는 소비를 보여준다. 이제 5060세대에게 실버 혹은 그레이로 대표되는 중장년의 색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팔세대는 다채로운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낸다. 인구수뿐 아니라 자산 규모와 소비 측면에서도 이들은 업계의 판도를 충분히 뒤흔들 만한 영향력 있는 소비군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TV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 열풍의 진원지도 오팔세대다. 김난도 교수는 “엄마가 쓰던 물건을 딸에게 물려주는 것은 옛말이다. 요즘은 딸이 쓰는 젊은 제품을 엄마들이 사서 쓰는 ‘소비의 대올림(대물림이 아닌)’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아홉째는 ‘편리미엄’. 현대의 소비자들은 스마트하다. 꼭 해야 할 일 외의 나머지는 대신 해줄 사람을 찾는다. 가사의 외주화, 노력 대행 서비스, 가정간편식 시장이 성장하는 배경이다.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기 어려운 1인 가구,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부부 등이 주된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변화다.

마지막 열 번째는 ‘업글인간’이다. 요즘 직장인은 ‘승진’보다 ‘성장’이 더 중요하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어제의 나보다 한 단계 성장하는 ‘자신과의 싸움’에 더 신경 쓴다. 성공 기준도 바뀌었다. 남들이 알아주는 명문대 진학이나 대기업 입사의 중요성은 이제 예전 같지 않다. 스펙 경쟁으로 뚫은 관문은 잠시 동안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지만 영원히 의미 있는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업글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나의 자산으로 남아 확실한 내일을 보장하는 ‘성장’이다.

김난도 교수는 이 중에서도 2020년 소비 트렌드의 가장 중요한 세 축으로 ‘세분화’ ‘양면성’ 그리고 ‘성장’을 꼽았다. 시장을 세분화해서 나누는 작업은 마케팅의 기본이었지만, 최근의 세분화 경향은 고객 개개인, 그 이상으로 극도로 잘게 나누는 것이 됐다. 그래서 특화가 생존의 조건이 됐으며, 소비자의 삶이 세분화되면 그 쪼개지는 자아가 그때그때 달라지기에 소비자는 양면적이 돼간다는 것이 김난도 교수의 설명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장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면 무엇보다 고객을 잘게 나눠 그 속에 숨겨진 욕망들을 발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편 김 교수는 2019년 대한민국 10대 트렌드 상품으로 ‘괴식·이색 식품’ ‘대형 SUV’ ‘배송 서비스’ ‘에어프라이어와 3신가전(로봇청소기·식기세척기·빨래건조기)’ ‘인플루언서’ ‘재출시 상품’ ‘지역 기반 플랫폼’ ‘친환경 아이템’ ‘한 달 살기’ ‘호캉스’를 꼽았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2호 (2019.11.06~2019.11.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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