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바빠요?” 눈도 마주치지 않던 그가 처음 건넨 말은 꽤나 저돌적이었다. 오늘따라 날 쳐다보는 것 같다는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던 것. 그저 같은 타임 알바였던 그와의 사이가 이렇게 변하는 걸까. 그냥 집에 있으려 했다는 수줍은 대답에 그는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럼 대타 좀 해줄래요? 주말에 데이트가 있어서…” 요즘 들어 엿 먹이고 싶은 사람이 많다.

얼핏 보면 콩트 같지만 사실 광고다. 홈플러스가 자사 창고형 온라인몰인 ‘더클럽’에서 판매하는 호박엿을 홍보한 것. 홈플러스 더클럽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간 이 글에는 좋아요 800여개가 눌렸다. 댓글에는 “홈플 미쳤다”, “너무 웃겨요”, “요즘 인싸”, “이 페이지 뭐임”, “명필” 등의 반응이 나타났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홈플러스 더클럽은 ‘드립 맛집’으로 불리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사진=홈플러스더클럽 인스타그램 캡처
/사진=홈플러스더클럽 인스타그램 캡처

◆홈플러스는 어쩌다 ‘드립 맛집’이 됐나

홈플러스는 지난 7월29일 홈플러스 더클럽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었다. 이 계정은 매주 4회에 걸쳐 더클럽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한가지씩 소개한다. 특정 상품을 패턴 형식으로 배열한 사진 한 장을 올리고 소개 글을 덧붙이는 식이다. 사실상 상품을 소개하는 글은 아니지만 오히려 상품에 대한 주목도가 뛰어나다. 글을 읽고 나면 상품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특히 작성자의 필력이 돋보인다. 돼지의 입장에서 쓴 소시지 홈플러스 입점기, ‘심약한 분은 읽지 말아주세요’로 시작하는 과자 소개글, 단호박죽·야채죽·소고기죽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인터넷 소설 패러디까지 웃음코드가 다양하다. 또한 8·15 광복절에 한국 요리인 명란젓을 소개하거나 임신테스트기를 홍보하며 불임 부부의 이야기를 엮는 등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 같은 게시글을 토대로 홈플러스 더클럽 계정은 입소문을 타고 있다. 계정을 개설한지 한달 만에 팔로워가 2000명을 기록했고 두달째에는 2만명을 넘어섰다. 또 책을 출판해달라거나 계정 관리자 월급을 인상해달라는 등의 요청도 줄을 잇고 있다.

홈플러스 내부 반응도 긍정적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고객들의 반응은 물론 내부 평가도 좋다”며 “아직 수치를 도출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홈플러스 더클럽이라는 서비스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마케팅 비결은 젊은 감각에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게시물은 전부 지난해 10월 입사한 모바일 사업부 신입사원의 작품이다. 팀장급 이상은 이 작품에 관여조차 하지 않는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른바 ‘병맛’ 게시물 제작이 가능했던 건 신입사원의 젊은 감성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라며 “팀장급 컨펌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둔다”고 전했다.

◆유통업계 ‘B급 마케팅’ 효과는

동원참치 광고. /사진=동원 F&B 제공
동원참치 광고. /사진=동원 F&B 제공

홈플러스뿐만이 아니다. 최근 유통업체들은 독특한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다. 특히 자유롭고 파격적이며 재미를 추구하는 이른바 ‘B급 감성’을 내세운 마케팅이 인기다.
최근 온라인을 강타한 동원 F&B의 동원참치 광고도 이중 하나다. 광고에 실린 ‘참치송’은 중독성 강한 후크송으로 화제가 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참치송’이 올해의 ‘수능금지곡’으로 지정됐을 정도다. 이 광고는 지난 7월 유튜브에 첫 공개된 이후 한달 만에 1500만뷰를 달성했다. 조회수, 시청시간, 시청유지시간 등을 고려해 선정하는 ‘구글 아시아-태평양 유튜브 광고 리더보드’로도 뽑혔다. 

언어유희로 B급 감성을 살린 사례도 있다. 한국야쿠르트 팔도가 팔도비빔면 출시 35주년을 맞아 출시한 ‘괄도네넴띤’이 그 주인공이다. 이 제품은 ‘팔도비빔면’ 포장지 글씨체가 ‘괄도 네넴띤’으로 보인다고 해서 젊은층에 사이에서 사용하던 신조어를 반영했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모양이 비슷한 자모로 바꿔 쓴 것이다. 

출시 직후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2월 온라인 채널에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매진을 기록했고 곧바로 이어진 2차 판매에서도 조기 완판됐다. 한정판 500만개가 완판되면서 결국 이 제품은 정식 출시로 이어졌다. ‘괄도네넴띤’의 선전은 ‘비빔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실제 제품 출시 당시 온라인 상에는 구매 인증사진이 줄을 이었고 제품명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앞서 신세계 온라인몰 ‘SSG’의 광고도 언어유희로 재미를 봤다. SSG를 ‘쓱’으로 읽어 “코트 하나 ‘쓱’ 해야겠다”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 낸 것. SSG는 광고 노출 기간 동안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20% 이상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B급 마케팅은 젊은층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단기간에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SNS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전파력이 빨라 바이럴 효과도 뛰어나다.

업계 관계자는 “SNS는 시간적 제약이나 표현의 제한이 적어 B급 코드를 활용하기 좋다”면서 “기업들이 밀레니얼 세대를 잡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만큼 트렌드를 반영한 B급 마케팅이 더욱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