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야 통한다…‘패스트 콘텐츠’ 시대

이유진 기자

5분 예능·10분 드라마·15초 뉴스…방송가 ‘짧은 콘텐츠’ 선보이는 이유

tvN <신서유기 외전: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한 장면. 5분짜리 예능이지만 정규편성을 받았고 광고도 붙었다.  tvN 제공

tvN <신서유기 외전: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한 장면. 5분짜리 예능이지만 정규편성을 받았고 광고도 붙었다. tvN 제공

간단한 조리과정을 거쳐 5~10분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이제는 5~10분이면 “TV프로그램 한 편 잘 봤다”고 말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든 문화 콘텐츠를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스낵컬처’ 시대를 지나,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 있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패스트콘텐츠’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난 20일 첫 방송한 tvN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신서유기 외전)의 러닝타임은 5분이었다. ‘3분 카레’도 아니고 5분짜리 예능이 말이 되나 싶지만, 엄연한 정규 편성 프로그램이었다.

tvN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
러닝타임 5분으로 정규 편성
시청률 4.6%에 광고도 앞뒤로 붙어
YTN은 15초 뉴스 유통

<신서유기 외전>은 개그맨 이수근과 가수 은지원이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나는 과정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첫 회는 특별히 ‘6분 편성’으로 꾸며졌다. 이날 방송에는 이수근과 은지원이 공항에서 만나 비행기에 탑승하는 모습이 담겼다. 출연자들은 ‘5분 예능’의 정규 편성 소식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정규 편성을 확정지었는데 방송 시간은 무려 5분”이라며 “방송 최초다. 그래서 240회 정도 분량이 나왔다. 버릴 게 없다. <신서유기8> 안 찍어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방송이 시작된 지 막 4분이 넘자 ‘조금 있으면 방송 끝남’이란 자막이 떴다. 1분쯤 지나자 다음 회 예고와 함께 실제로 방송이 끝났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진짜 5분만 방송할 줄은 몰랐다” “6초 같은 6분이었다” 등 신선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6분이 아쉬운 시청자들에겐 유튜브를 통해 ‘보너스 영상’이 제공됐다. TV 시청자들은 신선한 충격에 즐거워했고, 모바일 시청자들은 숨은 콘텐츠를 찾아보는 재미까지 알뜰히 챙겼다. 5분짜리 방송이라도 챙길 건 다 챙겼다는 반응도 나왔다. 프로그램 앞뒤로 광고도 붙었고, 4.6%(닐슨코리아) 시청률도 집계됐다.

MBC가 지난 추석연휴 동안 방송한 <오분순삭>은 ‘하이킥 시리즈’ 등 과거 인기프로그램을 5분 단위로 편집해 엮었다.  MBC 제공

MBC가 지난 추석연휴 동안 방송한 <오분순삭>은 ‘하이킥 시리즈’ 등 과거 인기프로그램을 5분 단위로 편집해 엮었다. MBC 제공

최근 등장한 5분짜리 프로그램은 <신서유기 외전>뿐만이 아니다. MBC는 지난 11일과 14일 추석연휴 동안 <오분순삭>이라는 20분 분량의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오분순삭>은 <무한도전>, ‘하이킥 시리즈’ 등 MBC가 과거 방송했던 인기 프로그램을 5분 단위로 편집해 엮은 프로그램이다. 본래 MBC 유튜브 채널에서 선보이던 콘텐츠였지만, 큰 인기를 끌자 TV 프로그램으로 재등장했다. 정규 프로그램을 잘게 잘라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으로 유통하던 것과 반대로,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은 콘텐츠가 TV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새로운 사례다.

YTN은 10대 시청자를 모으기 위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 등을 통해 <15초뉴스>를 선보였다.  YTN 제공

YTN은 10대 시청자를 모으기 위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 등을 통해 <15초뉴스>를 선보였다. YTN 제공

10대 시청자를 공략해 아예 ‘초 단위’ 콘텐츠를 선보이는 방송사도 있다. 뉴스 채널 YTN이다. YTN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배속 날씨’ ‘15초 뉴스’ ‘N년 전 뉴스’와 같은 15초 뉴스를 유통한다. 15초를 기준으로 설정한 건 10대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동영상 SNS 틱톡이 최대 15초까지 영상 업로드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YTN은 15초 뉴스서비스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인스타그램 구독자 1만명, 틱톡 구독자 4000여명을 달성했다.

이처럼 방송사들이 극도로 짧은 콘텐츠를 선보이는 배경에는 시청자들의 동영상 소비 패턴 변화가 있다. 디지털 마케팅 업체 메조미디어가 전국 만 15~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2018 디지털 동영상 이용 행태 조사’에 따르면 전 연령대가 동영상 콘텐츠를 시청할 때 TV(26.2%)보다는 모바일(42.4%)을 이용한다고 응답했으며, TV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주요 장면만 짧게 편집된 ‘클립영상’을 본다는 응답이 54.4%로 절반을 넘었다.

특히 연령대가 어릴수록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10대는 ‘클립영상을 시청한다’(32.4%)는 응답이 ‘전체 프로그램을 시청한다’(12.7%)는 응답보다 약 3배 높게 나타났다.

“Z세대 평균 집중 시간 8초”
TV보다 모바일로 클립 영상 즐기는
동영상 소비패턴 변화 반영

박혜숙 평택대 브랜딩학과 교수는 2016년 발표한 논문 ‘신세대 특성과 라이프스타일 연구’에서 “Z세대(2000년대 이후 출생)의 평균 집중 시간이 8초”라며 “짧은 시각적 자료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고 했다.

한 케이블 방송사 예능PD는 “제작자들 사이에선 이런 추세라면 굳이 1시간 분량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며 “과거처럼 긴 방송을 잘라 클립영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클립영상처럼 짧은 영상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것이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온라인에선 이미 짧은 시간 안에 자극적인 내용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콘텐츠가 인기를 끈 지 오래”라며 “중요한 건 파격적인 시도가 어려운 방송사들이 온라인 트렌드를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는 상황이 된 데 있다”고 말했다.

하 평론가는 “콘텐츠가 짧아질수록 긴 호흡의 콘텐츠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젊은 시청자들 시선을 끌 수 있는 데다, 여러 플랫폼에 유기적으로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어 새로운 시청층의 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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