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포기하기
입력 : 2019-04-12 00:00
수정 : 2019-04-11 14:12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별로 부러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끊임없이 더 가지려 하고, 아름다운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성형수술 등에 집착하고, 권력을 가지면 언제 높은 자리에서 내려갈지 몰라 불안감에 시달리고, 무료한 이들은 민숭민숭한 삶을 도박이나 마약으로 자극하다 결국 추락한다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얼마 전 진짜 부러운 사람을 만났다. 전남 여수에 강의하러 갔다가 오랜만에 만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다. <남자의 물건>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한 그는 명지대학교 교수를, 그것도 65세 정년이 보장되는 정교수를 홀연 그만두고 일본으로 떠나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문화심리학자, 나름 화가’로 자신을 규정하는 그는 귀국 후 연고도 없는 여수로 내려가 화실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 요즘은 여수에서 배 타고 들어가는 섬에 있는 낡은 미역창고를 개조해 어마어마한 크기의 서재 겸 집필실을 만드는 중이다.

섬에는 들어갈 시간이 없어 바다가 보이는 그의 화실만 방문했다. 통유리로 보이는, 바다에 붉은 노을이 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 같았다. 강의나 책을 써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서재를 만들거나 수시로 자료 조사차 여행을 한다는 그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전시회는 안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전시회 할 생각 없어요. 난 전시회, 출판기념회, 심지어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장례식도 하지 않을 거예요. 그게 다 사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잖아요. 난 사람들의 인정을 포기하고 이런 나만의 공간을 선택했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공간에서 진짜 행복을 느껴요. 사실 남자들이 자기만의 공간을 찾기 어렵잖아요. 여자들은 부엌이나 화장대라도 있지…. 더구나 집을 떠나 이렇게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죠.”

나는 그가 선택하고 만든 근사한 ‘공간’도 부러웠지만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포기했다’란 그의 단호한 결정이 더 부러웠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남들에게 더 관심을 둔다. 끝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괴롭히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정작 자신은 돌보지 않는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정말 하기 싫은 일은 무엇인지, 나를 즐겁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사람들과 세상의 인정에 연연한다.

남들의 인정을 포기한다는 것은 무조건 내 멋대로 살겠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셔츠 하나를 살 때도 즐겁고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고르는 기쁨을 자신에게 주는 것,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치사하고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을 권리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오롯이 충실하고 싶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인정해주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수고했어. 그동안 잘 살았어”라고 말하며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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