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건강이야기] 쥐약은 쥐만 노리지 않는다
[반려동물 건강이야기] 쥐약은 쥐만 노리지 않는다
  • 김현욱 24시 분당 해마루동물병원 응급중환자의료센터 센터장ㅣ정리•양미정 기자 (certain0314@k-health.com)
  • 승인 2019.03.2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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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 24시 분당 해마루동물병원 응급중환자의료센터 센터장

얼마 전 경기도 한 지방자치단체의 공원에 쥐약(살서제)이 무분별하게 살포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길고양이와 개를 노린 악의적 범죄로 의심한 시민과 경찰이 수일간 추적한 결과 관할 보건소 공무원이 민원 해결과 전염병 방지 차원에서 규정을 지키지 않고 살서제를 뿌린 것으로 밝혀졌다. 쥐약은 작은 포유류를 죽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되었으나 이런 제품은 사람이나 다른 동물에게도 치명적이다.

쥐약은 약성분에 따라 항응고제(Anticoagulant), 브롬메탈린(Bromethalin), 콜레칼시페롤(Cholecalciferol), 인화아연(Zinc Phosphide)으로 구분한다. 성분에 따라 중독증상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항응고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살서제다. 와파린(Warfarin), 클로로파시논(Chlorophacinone), 발론(Valone), 브로디파쿰(Brodifacoum), 브로마디올론(Bromadiolone), 쿠마퍼릴(Coumafuryl), 디파시논(Diphacinone), 핀돈(Pindone) 등이 여기에 속한다. 비타민K 의존성 응고인자의 합성을 방해해 전신출혈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섭취 후 12~24시간 잠복기를 지나 출혈이 발생한다. 반려동물이 항응고제 살서제를 섭취한 경우 섭취 직후에는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섭취 여부에 대한 연관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흔하다. 출혈은 몸의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지만 보통 흉강이나 복강과 같은 내부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코피, 혈구토, 혈변과 같이 외부 출혈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출혈량이 많은 경우 출혈성 쇼크를 보이며 흉강 내로 출혈이 되는 경우 쇼크와 함께 호흡곤란이 나타나 동물병원에는 호흡곤란으로 응급 내원할 때가 많다. 동물병원에서는 혈액검사와 응고인자검사를 통해 추정진단을 내릴 수 있다. 산소공급과 쇼크에 대한 응급조치와 수혈, 비타민 K 투여를 통해 회복될 수 있으나 치료 시기를 놓치면 매우 위험하다.

브롬메탈린

브롬메탈린은 뇌와 척수신경의 부종을 유발하는 신경독성이 있는 살서제다. 많은 양을 섭취한 경우 4~36시간 후에 과흥분, 근육 떨림, 전신 발작, 뒷다리 과다반사, 의식저하, 고체온 및 사망이 일어난다. 적은 양을 먹은 경우 최대 7일까지 증상이 나타나지 않다가 침울, 뒷다리 허약, 마비, 파행이 나타날 수 있다. 

7일 내에 쥐약이 섞인 미끼를 먹었거나 먹었을 가능성이 있었으며 신경증상이 동반된 경우 추정진단을 내릴 수 있다. 섭취 직후 동물병원에 내원했다면 구토를 유발하고 활성탄을 경구 투여해서 흡수를 최대한 막고 대증치료를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발작과 같은 신경증상이 이미 나타났다면 대증치료를 하더라도 예후는 매우 불량하다.

콜레칼시페롤

콜레칼시페롤은 비타민 D3다. 주로 영양제로 사용되지만 쥐약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섭취하면 비타민 D 작용으로 고인혈증과 고칼슘혈증이 유발돼 신부전, 심장이상, 고혈압, 의식저하, 식욕결핍, 구토, 설사 및 사망이 일어난다. 섭취 18~36시간 후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며 침울, 식욕결핍, 다음다뇨를 주로 보인다. 섭취 12~24시간 후에 혈중 인 수치가 증가하며 이후 12~24시간이 지나면 혈중 칼슘 수치가 증가해 구역질, 구토, 혈토, 침울 등이 나타난다. 

특별한 진단 방법이 없어 섭취 여부 병력 확인 또는 섭취 초기 칼슘, 인을 포함한 혈액검사 후 칼슘과 인 수치 변동 등을 통해 추정진단한다. 섭취 초기라면 흡수를 막기 위한 구토유발, 활성탄 경구 투여를 동물병원에서 응급 처치로 받아야 하며, 고칼슘혈증에 대한 대증치료 및 신장기능 평가 등 장기 부전에 대한 모니터를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이미 신부전이 발생한 경우 예후는 불량하다.

인화아연

인화아연이 포함된 미끼를 섭취하면 소화관 내의 산 때문에 독성이 있는 포스핀(Phosphine) 가스가 생성돼 가스 흡인 시 급성 비심인성 폐수종으로 호흡곤란이 일어난다. 음식 없이 섭취한 경우 인화아연은 체내로 흡수돼 5~14일 이내에 간부전 또는 신부전을 일으킨다. 섭취 직후 동물병원에서 구토유발, 활성탄 투여 등을 통해 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으나 예후는 좋지 못하다.

봄철을 맞아 가정에서 살서제를 사용하거나 아파트단지, 공원, 공장 등에서 관리 목적으로 살서제가 배포되는 경우가 있다. 살서제를 사용해야 한다면 질병관리본부의 방역소독 지침에 따라 타 동물의 중독을 막기 위해 다음과 같은 규정을 지켜야 한다. ▲음식물로 오인하지 않도록 청색이나 검은색으로 염색해야 하고 ▲음독사고를 막기 위해 직경 6cm의 구멍이 있는 미끼통을 사용하는 것이다. ▲살서작업이 끝난 뒤에는 미끼먹이를 철저히 수거하는 것도 포함된다. ▲사용하고 남은 쥐약은 어린이나 반려동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반려동물 산책 시 반드시 목줄을 하고 반려동물이 살서제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음식물을 먹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혹시 이상 물질 섭취 시 증상이 없더라도 동물병원에 데려가 적절한 조치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살서제 섭취 후 초기 치료를 놓쳐 임상증상이 나타난 경우 그 살서제가 비항응고형이라면 예후가 매우 불량하다. 와파린과 같은 항응고형 살서제는 출혈, 호흡곤란이 발생해도 중환자 입원 및 집중치료를 통해 회복될 수 있지만 많은 치료비용과 위험이 따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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