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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심리학] 기업 회의나 논문 쓸 때 섣부른 해석이 분석 망쳐

입력 : 
2018-12-28 0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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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박사과정 대학원 시절부터 선배 연구자들로부터 논문 집필 과정에서 자주 들었던 지적 사항이 있다. 그리고 이 지적은 꽤 노련한 연구자가 됐다고 나름 자평하는 지금까지도 가끔 듣곤 한다. 이른바 분석해야 할 곳에서 해석, 즉 논의와 논평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학술지에 논문을 제출하게 되면 많은 연구자들이 심사평으로 듣는 사항이기도 하다. 왜 논문에서 결과의 '분석'과 '논의'를 지면의 다른 곳에서 구분해 해야 하는 것일까? 논문을 작성하는 사람 입장에선 '자기 논문의 배가 산으로 가는' 엉뚱한 전개나 결론에 도달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 입장에선 읽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뿐 아니라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아 논문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논문에서만 주의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 대화나 회의에서도 조심해야 하는 사항이다.

논리학에서 분석(分析)은 '개념이나 문장을 보다 단순한 개념이나 문장으로 나눠 그 의미를 명료하게 함'을 뜻한다. 반면 해석(解釋)은 '문장이나 사물 따위로 표현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함'으로 정의된다. 영어에서도 'analysis'와 'interpretation'으로 전혀 다른 의미로 나뉜다. 분석은 지금까지 하나로 봤던 무언가를 여러 개로 나누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반면 해석은 그 많은 내용 중 중요한 핵심과 느낀 바를 상대적으로 더 주관적으로 요약하는 것이다. 그래서 분석은 복잡하고 다수의 내용이지만 동질적이어야 하고 해석은 간단하지만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보자.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비빔밥에 뭐가 들어가지? 고추장, 당근, 상추, 계란, 참기름 등이지?" 이것은 비빔밥을 분석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후에 다양한 얘기가 진행된다. 다른 친구가 '고추가 몸에 좋다는 연구가 요즘 들어 많이 나오더라'든가 '참기름 공장의 청결도에 문제가 많다는 기사를 봤다'는 식의 다양한 이야기가 이후에 나온다. 하지만 그 비빔밥에 관한 분석 첫머리인 고추장이 언급되자마자 친구들 중 누군가가 바로 그 고추와 건강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제 비빔밥은 뒷전으로 밀리고 자리에 있는 친구들끼리 고추에 관한 다른 이야기만 하기 십상이다. 이것이 바로 분석 초반부에 사소한 해석이 들어가면서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다.

기업에서도 이런 경우를 비일비재하게 본다. 회의 초반부에 나오는 해석들 말이다. 이런 해석 중 특히 최악인 것이 분석된 무언가의 정확성을 가지고 초반부에 시비를 걸거나 '그 자료와 말만 비슷하지 내용상으로는 무관한 자신의 무용담' 혹은 더 나아가 '그 분석 내용과 관련된 책임성'을 추궁하는 언행들이다. 물론 긍정적인 해석들조차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이후에 계속될 부정적인 내용에 관한 분석들에 참석자들을 둔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분석은 사실과 사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 위해 구성 요소를 확인하고 빠진 내용을 점검하는 것이다. 그리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분석 내용에 기반한 질문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해석과 그에 따르는 질문은 이 모든 분석을 모두 마친 뒤에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분석이 망가져 엉망이 되고 만다. 즉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회의 때 누군가가 분석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의 말을 잘라 자신의 해석을 들이미는 사람은 최악의 회의 참석자다. 이런 사람을 두고 미국 CIA의 전신인 전략정보국(OSS)은 1940년대에 적국의 조직과 사회를 망가뜨리는 공작원의 행동이라고 지침까지 마련했다. 더 정확히는 이렇게 쓰여 있다. '회의에서 주제와 관련 없는 방향으로 논점을 몰고 간다' '실패의 책임을 누가 지는가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도출된 내용에 단어나 용어의 정확성으로 시비 건다' 등 한결같이 분석을 시작하려는 초반부에 해석의 언행으로 끼어드는 훼방꾼들을 의미한다. 특히 리더는 이런 사람들을 조직을 망치는 적국의 스파이로 간주해야 한다. 자고로 남의 말 자르는 사람들 중에 조직에 이로운 사람을 못 봤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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