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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아날로그 온기로 전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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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아날로그 온기로 전하는 마음

연말연시에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어릴 때는 일찌감치 부지런을 떨며 재료를 사서 하나하나 손으로 그리고 오리고 부치며 나만의 수제카드를 만들어 보내곤 했다. 그래 봐야 친구들이나 선생님 정도였지만, 문방구에서 사서 보내는 카드는 ‘정성이 없는 사람이나 하는 짓’처럼 생각할 정도로 카드나 연하장에 대해 이상하게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선 12월이 시작될 때 인사나 감사를 전해야 할 사람 리스트 만들고 제법 다양한 카드나 연하장을 구비된 큰 문구점에서 구매해서 보냈다. 내 나름의 스타일을 담은 메시지를 고민했던 과거가 새삼스럽다.

그런데 이제 이 시기의 휴대전화는 조용한 아우성이다. 어느새 소리 없이, 하지만 빠르게 연달아 쌓이는 메시지들이 수북하다. 창을 열면 메신저 대화방마다 빨간 새 메시지 숫자가 좌르르 표시되면서 나를 기다린다. 차분히 열어볼 사이도 없이 쌓이는 수많은 메시지는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새해의 덕담을 함께 덧붙인 인사말들이지만, 다채로운 이모티콘이 대신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메시지가 있는 전자카드나 사진, 그림이 메시지를 전한다. 이 가운데 마음을 툭 잡아채는 메시지는 생각 외로 아무런 이미지 없이 한 줄의 글일 때가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만 건네는 말! 어디서 가져온 것도 어디로 다시 가져갈 말도 아닌, 그냥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나에게서 멈춘 말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무수한 인사말이 오가는 이 시기는 주목받기 어렵지 모르지만, 생각 외로 자기 마음을 인상적으로 남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누구나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 좀 더 특별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이런 분들에겐 내 마음을 잘 전할 좀 더 색다른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도 가치 있다. 빠르지만 조금 차가울 수 있는 디지털 메시지보다 조금 느리거나 세련되지 않아도 아날로그 감성을 깨우는 맞춤 메시지는 어떨까?

예를 들면 우정사업본부가 주관하는 ‘느린 우체통’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이다. ‘느린 우체통’은 빠른 것이 미덕인 오늘날 기다림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자 추억을 기념할 장소에 설치한 우체통이다. 우체통 가까운 곳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엽서나 직접 가져온 우편물에 사연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6개월이나 1년 뒤 봉투에 적힌 주소로 배달해준다. 이에 더해 ‘나만의 우표’를 제작해서 우편물에 붙일 수도 있다. ‘나만의 우표’는 신청인이 원하는 사진이나 그림을 넣어 우표로 만들어주는데 일반 우편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만약 그 내 우편물을 받아볼 사람과 추억이 있는 장소, 혹은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우표라면 어떨까? 메시지를 읽어보기도 전부터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을 전할 수 있다.

‘손수’ ‘조금 느리게’ ‘맞춤’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바쁜 삶 속에서 쉽지 않은 수고가 따른다. 그래서 받는 사람에게 특별하게 다가간다. 마음을 나누고 마음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가운데 느리게 지나가는 것은 찬찬히 잘 보게 된다. 그 느리게 다가온 메시지가 나에게 와서 멈출 때 우리의 마음엔 파동이 생긴다. 연말연시 쉽게 소통할 도구를 손에 하나씩 든 사람들이 날리는 메시지의 홍수 속에서 살포시 누군가 마음 깊이 가닿는 따뜻한 메시지로 문을 두드려보자. 새해의 좋은 기운은 거기서 시작된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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